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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들어 유럽인들의 표적이 된 대서양 3개 제도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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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날짜18-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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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해외로 나가는 대서양 항로 상에 아조레스, 카나리아, 마데이라라는 세 개의 제도(諸島)가 있다. 이 섬들은 고대 로마 시대에는 잘 알려져 있었지만, 중세에 들어오면 해상 연결이 끊어졌고, 다만 전설 속에 희미하게 등장할 뿐이었다. 사람들은 서쪽 먼바다 끝에 영원한 행복의 섬이 있는데 이곳에는 생전에 정의로운 일을 한 고결한 사람들이 죽은 다음에 가게 된다고 믿었다. 이것을 ‘행운의 섬(Fortunate Isles, Isles of the Blessed)’이라 불렀다. 유럽인 항해사들이 이 섬들을 재발견한 것은 대체로 14세기에 와서의 일이다. 곧 유럽인들이 몰려와서 15세기까지는 이 섬들의 정복이 완료되었다. 현지 주민들은 노예로 끌려가거나 절멸했고, 자연환경이 완전히 피폐해질 정도로 약탈당했다. 일례로 마데이라(Madeira)는 그 말 자체가 포르투갈어로 ‘나무’를 뜻한다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 삼림이 우거진 곳이었지만 계속되는 벌채로 인해 결국 나무 한 그루 없는 상태로 변모했다.

세 곳 가운데 특히 주목할 곳이 카나리아 제도이다. 테네리페, 그란 카나리아를 비롯한 7개 섬으로 구성된 카나리아 제도는 다른 두 제도에 비교해 상대적으로 면적이 넓고 해발도 더 높을 뿐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도 가장 복잡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곳에만 유럽인 도착 이전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곳 주민을 관체족(the Guanches)이라고 부른다. 

 

관체족은 기원전 500년경에 북아프리카에서 이곳으로 항해해 온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들이 도착 후에 항해 기술을 완전히 잊어먹어서 거의 완전한 고립 상태에서 살게 되었다는 점이다. 처음 관체족이 카나리아 제도에 왔을 때 그들은 개, 돼지, 양, 염소 같은 가축과 보리, 밀, 콩, 완두 같은 곡식을 가지고 왔으며, 이것들을 재료로 하여 그들의 생활이 구성되게 되었다. 이들의 문화는 말하자면 거의 신석기시대 수준에서 크게 진척되지 못하고 고착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큰 약점 중 하나는 금속 제련술을 모른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처음 섬에 왔을 때는 금속을 다루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을지 모르나, 이 섬에는 어떠한 금속 광상도 없기 때문에 결국 그 기술을 잊어버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럽인들에 맞서 싸울 때 금속 무기가 없다는 것은 분명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유럽인들은 1402년부터 본격적으로 이 제도에 대한 식민화를 시도했다. 프랑스인, 포르투갈인, 에스파냐인들 원정대가 연이어 도착해서 섬 주민들을 공격했고, 때로는 이 과정에서 유럽인들 간에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1424년 포르투갈인 원정대를 보면 2,500명의 군인과 129마리의 말을 끌고 와서 전투를 벌인 결과 많은 관체족 사람들을 노예로 끌고 갔다. 최종적으로 이 섬을 정복한 것은 1478년의 에스파냐 원정대였다. 이들은 말과 대포를 동원하여 주민들을 공격해서 저지대를 점령했고, 현지 주민들은 모두 고지대로 쫓겨났다. 이런 상태에서 5년 동안이나 전쟁이 계속되었다. 1483년에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사람들이 항복함으로써 카나리아 제도는 완전히 유럽인들의 지배 아래에 들어갔다.

 

왜 관체족이 졌을까? 그들은 분명 용맹한 전사들이었고 전투 기술도 상당히 뛰어났다. 당대 유럽인들의 기록에 의하면 관체족 사람들은 손가락을 이용해서 소리를 내는데 이것이 거의 언어 수준이며(!), 이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금세 소집한다고 한다. 그리고 아주 뛰어난 돌팔매질과 궁술로 유럽인 병사들을 괴롭혔다. 유럽인들이 아무리 우수한 무기를 가지고 싸운다 해도 이런 식으로 게릴라전을 펼치는 상대를 쉽게 눌러 이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관체족은 우선 그들 간 단합이 안 되어 있는 것이 약점이었다. 배가 없으므로 7개 섬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도 않았다. 서로 고립되어 살았기 때문에 아마 섬마다 언어가 다르게 변화해 간 듯하다. 게다가 한 섬 안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도 협동하여 저항하지 못했다. 물론 유럽인들에게 사면의 바다를 완전히 제압당해 있고, 금속 무기와 총포가 없으므로 어떻게 보면 유럽 세력에게 지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수 있다. 그리고 말을 처음 보았던 이들은 말 탄 기병을 보고 혼비백산하였다. 말의 엄청난 군사적 위력은 나중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인디언들과 맞부딪쳤을 때 다시 재현될 것이다. 

 

또 한 가지 고려할 점은 유럽인들이 자신도 모르게 들여온 병균이었다. 전혀 저항력을 갖추지 못한 유럽의 낯선 병원균 앞에서 많은 사람은 속수무책이었다. 병원균과 그에 대한 면역체계가 서로 다르게 진화한 사람들이 갑자기 만났을 때 급격한 병세의 전염병이 돌아서 사람들이 몰살당하는 일은 역사상 자주 있는 일이다. 관체족 사람들이 걸렸던 병은 모두라(modora)라는 모호한 이름으로 불렸는데, 의학사가들은 이 병이 아마도 티푸스가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 저지대에서 진을 치고 있던 에스파냐 병사들은 고지대의 관체족 주민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다가 뒤늦게 전염병이 돌았다는 것을 알고 산으로 올라가 보았다. 그곳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려 있어서 개들이 뜯어먹고 있었다. 

 

자신들과 맞서 싸우는 상대방이 갑자기 병으로 쓰러져 죽는 것을 본 유럽인들은 흔히 이것을 하느님의 섭리로 돌리곤 했다. “신이 그들에게 역병을 보내어 며칠 만에 주민 3/4을 몰살했다.” 만일 전염병이 퍼지지 않았더라면 전쟁이 훨씬 더 장기간 지속하였을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노예로 팔려 갔다. 저항하는 사람이 사라진 이 지역에는 곧 ‘유럽화’가 진행되었다. 토끼, 낙타, 나귀 등의 가축들이 들어왔는데 이 가운데 일부는 야생동물이 되었다. 카나리아 제도만이 아니라 다른 두 지역 역시 유럽과 다른 대륙을 잇는 항로 위에서 중간 기착지 구실을 했으므로 보급품을 준비하는 기지 구실을 하는 외에, 유럽에 수출할 설탕 생산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군사 공격, 전염병의 확산, 주민의 노예화 혹은 전멸, 자원 약탈, 유럽의 가축과 작물 도입, 특히 사탕수수 재배의 확산, 이런 것들은 조만간 유럽인들이 해외 지역에 가서 반복하여 행하게 될 일들이다. 대서양의 섬들은 말하자면 유럽의 식민주의 데뷔 무대이자 실험실 구실을 했다. 관체족은 그와 같은 유럽의 팽창 과정에서 전멸당한 첫 번째 사례이다.

전설 속의 ‘행운의 섬’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 ‘불운의 섬’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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