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말씀

그래도 겔36:37-38 (2019. 10. 20)

페이지정보

작성자 admin 날짜19-10-20

첨부파일

본문

그래도 겔36:37-38
2019. 10. 20 주일 낮

겔36:37 주 야훼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그래도 : 주 야훼께서 이같이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에스겔서는 범죄로 인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있는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지금 비록 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때가 되면, 즉 70년이 차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데리고 고국 땅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번성하게 하여 예루살렘이 정한 절기의 양 무리 같이 황폐한 성읍을 사람의 떼로 채우겠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현실을 보면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말씀하신 그대로 됩니다.
창1:7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1:11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창1:14-15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또 그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됩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에게 하신 약속은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구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면 그대로 이루어 주면 되시지 왜 구하여야 한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1.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입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이 무엇입니까?
롬4:18-22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하나님이 노아를 기뻐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약속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 질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홍수로 심판하신다는 말씀을 믿지 않았지만 노아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 질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려 120년 동안 사람들의 조롱을 받으면서도 방주를 지을 수 있었고, 결국 그는 그 믿음으로 자기와 온 가족을 구원할 수 있었고, 새와 짐승의 씨를 보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히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하나님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인도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있고 없고의 차이입니다.
민14:2-9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그들이 왜 이렇게 하는 것입니까? 대적들은 네피림의 후손 아낙자손이고 그들의 성은 높고 견고하며 무기가 월등한 것만 보고 절망했기 때문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하셨으면 비록 대적이 강하고 성이 높고 견고해도 하나님은 반드시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여러분, 정탐꾼 12명이 똑같이 40일간 그 땅을 정탐했는데 그들이 보는 눈이 왜 그렇게 다른 것입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른 곳만 보고 왔던가요? 아닙니다. 눈은 마음의 창입니다. 믿음이 있고 없고에 따라서 보이는 것이 전혀 달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보는 것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없이 인간의 이성과 상식, 경험을 토대로 보는 것이 전혀 달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다니엘을 기뻐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한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이 자신을 해치려는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여전히 전에 하던 대로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자신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는 기도를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바벨론의 모든 박사보다 10배가 더 지혜로운 다니엘이 자신을 미워하는 대적들이 자기가 기도하는 것을 지켜볼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해서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기도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너무나 확실했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어놓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어떤 약속입니까?
대하6:36-39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그들이 주께 범죄하므로 주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적국에게 넘기시매 적국이 그들을 사로잡아 땅의 원근을 막론하고 끌고 간 후에 그들이 사로잡혀 간 땅에서 스스로 깨닫고 그들을 사로잡은 자들의 땅에서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하여 패역을 행하며 악을 행하였나이다 하며 자기들을 사로잡아 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과 주께서 택하신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 있는 쪽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보시오며 주께 범죄한 주의 백성을 용서하옵소서

하나님이 솔로몬의 이 기도를 들으시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대하7:1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 (응답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기도하는데 그것도 국정에 바쁜 총리 다니엘이 하루에 세 번씩이나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단9:1-3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깨닫자마자 다니엘이 한 행동이 무엇입니까?)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하나님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주신 그 말씀, 즉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70년 만이 그치리라는 말씀이 이루어 주기를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 기도가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어 주셔서 이방왕인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켜 칙령을 내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성전을 건축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지난 세월 동안 한국 성도들은 지나치게 기복적인 기도를 한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습니다. 기복적인 기도는 무엇입니까. 중요한 것은 기도의 내용이 아니라 동기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기도가 정말 하나님의 뜻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내 욕심의 충족을 위해서만 하는 것인지를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선지자 엘리야가 무려 삼년 반 동안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않았던 그 땅에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합니다. 이 사실만으로 엘리야의 기도가 기복적이었다고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그 증거를 찾아보겠습니다.
왕상18:1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엘리야는 무엇에 근거해서 기도했습니까.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한 것입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불을 내려 달라는 기도도 했습니다. 이 기도 또한 기복적인 기도가 아닙니다. 왜냐고요?
왕상18:36-38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내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응답받는 기도를 하려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엘리야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한다고 판단하셨을 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하늘의 문을 여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능력이 부족하여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큰 역사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큰 역사에 동참을 하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고 무엇을 받으면 그것이 귀한 줄 모릅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응답을 받게 되면 내가 지금 하나님의 큰 역사에 동참을 하게 되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것이 이루어질 때 감격을 얻게 됩니다. 이것은 기도한 자만이 아는 축복입니다.

전신전보의 발명가 모리스 교수는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교수님은 실험실에서 어떻게 해야 될지 막연해질 때 어떤 행동을 취합니까?" "나는 확신을 갖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미지의 실험에서 한계를 느끼고 괴로워할 때 나는 기도합니다. 그래도 착상이 떠오르지 않으면 또 엎드려 기도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새로운 착상이 떠오릅니다"고 했습니다. 기도하면 정말 하나님의 엄청난 일들을 알게 되고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놀랍게 역사 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렘33:2-3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 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어떤 가난한 과부가 전기 요금 청구서를 받아들고 큰 낙담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녀가 요금을 이미 다 치렀는데도 청구서가 다시 날아왔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미 값을 지불한 영수증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요금을 다시 지불해야 되지 않을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녀가 가진 돈은 자기 남편의 장례비로 거의 다 써버렸기 때문에 그녀는 영수증을 찾게 해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수금원이 그 과부의 집을 방문하여. 만일 며칠 안으로 요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법정에 고소하겠다고 윽박질렀습니다. 바로 그 때 나비 한 마리가 열린 창문으로 날아 들어왔습니다. 이걸 본 그녀의 어린 아들은 나비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소년이 그것을 잡으려 하자 나비는 소파 위에 내려앉았다가 그 뒤로 기어 들어가 버렸습니다. 소년은 그 무거운 가구를 옮길 수가 없었기 때문에 수금원에게 자기를 도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들이 가구를 밀어 제치자 종이 한 장이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그것을 집어든 과부의 눈은 기쁨과 흥분으로 동그랗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영수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간절한 믿음의 기도에 놀라운 방법으로 응답해 주셨던 것입니다.

기도하면 정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과 동역을 하게 되고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2. 기도를 통해서 나 자신을 바르게 발견하게 됩니다.

겔36:32 나 주 야훼의 말씀이니라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닌 줄을 너희가 알리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 행위를 인하여 부끄러워하고 한탄할지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놀라운 약속을 하신 것은 그들이 바르게 살고 착하게 살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겔36:22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그러므로 이 사실을 알고 너희 행위를 인하여 부끄러워하고 한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는 나의 참 모습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을 때는 내가 잘난 줄 알고 내가 똑똑한 줄 알았는데 기도할 때 내가 얼마나 흉악한 죄인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손해를 많이 보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깨달음이 옵니다. 죄와 허물이 깨달아져서 회개하고 거룩한 자가 됩니다.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깨달아져서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은혜를 받으면,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깨달아 충성하는 사람이 됩니다. 은혜를 받으면, 변화됩니다. 생활이 변화되고, 가치관이 변화되고, 삶의 목적이 아름답게 변화됩니다. 은혜를 받으면 경건의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축복 받을 그릇이 준비됩니다. 기도하면서 나의 참 모습을 알게 될 때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게 됩니다.

오래도록 교회문 밖에서만 맴돌던 인도의 한 청년이 눈병으로 심히 고통을 당하다가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눈을 정밀히 진찰한 의사는 긴장된 표정으로 눈이 살인적인 병독에 감염되었기에 두 눈을 뽑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므로 내일 즉시 두 눈을 뽑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절망이었습니다. 그 청년이 아픔과 괴롬으로 몸부림치고 있는데 크리스천 친구가 찾아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매달려 보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무슨 말인들 못 듣겠습니까? 그는 친구와 함께 교회에 나가 기도하는데 참으로 염치가 없었습니다. 그토록 예수 믿으라고 할 때는 끄덕도 하지 않던 자신이 죽게 되자 살려달라고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는 완악 했던 마음부터 회개하기 시작하니 기도의 문이 열려 모든 것을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그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눈이 퉁퉁 부을 정도였습니다. 다음날 마음이 홀가분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수술대에 올랐는데 다시 진찰을 하던 의사는 깜짝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토록 심하게 번졌던 독균이 깨끗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그의 뜨거운 회개의 눈물은 영육의 생명을 모두 고침 받게 했습니다. 기도는 나 자신을 바로 알게 하는 거울과 같습니다. 기도하는 자만이 자신을 바르게 발견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비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도는 전기의 스위치와 같고 수도꼭지와 같습니다. 전구의 스위치를 키면 전기가 들어와 밝은 빛을 발합니다. 발전소에서 이미 발전을 하여 우리 집까지 송전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쏟아집니다. 수원지에서 물을 생산하여 파이프라인으로 우리 집까지 이미 송수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잘못을 회개하고 우리의 삶의 회복을 간구 하면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우리의 삶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다 이루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실 때에 다 이루어 진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스위치를 켜는 것입니다. 꼭지를 트는 것입니다. 켜면 불이 들어오고 틀면 물이 나올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지 못했다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기도해도 회복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간구 한다면 회복의 역사가 여러분들의 삶 속에도 나타날 줄을 믿습니다.

3. 기도를 통해서 응답하신 축복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자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기도 없이 하나님이 주신 것을 받으면 그것을 주어도 감당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통해서 주신 응답은 벌써 기도하면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지혜도 생기고 능력도 생기기에 그것을 주시면 잘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이 됩니다.

기도는 정말 신비한 것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능력의 세계를 알게 됩니다. 기도하면서 어떻게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지도 알게 됩니다.

어떤 목사님이 기도는 마치 기관차와 객차를 연결하는 고리와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 객차와 같은 사람입니다. 객차에는 동력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기관차에 연결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을 싣고 목적지까지 데려다 줄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관차 되시는 하나님께 기도라는 고리를 가지고 연결할 때 내가 하나님의 큰 역사에 동참하게 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 바운즈는 "교회는 보다 좋은 방법을 찾고 있으나 하나님은 보다 나은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주님의 교회는 조직과 방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쓰시는 사람, 진정으로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과 동역하는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1517년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했습니다. 평범한 신부에 불과했던 그가 어떻게 절대 권력의 교황의 세력과 맞설 수 있었을까요? 루터는 "만일 내가 새벽에 두 시간 이상을 기도하지 않았다면 그날의 승리는 마귀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나에게는 너무나 할 일이 많았다. 그러나 날마다 세 시간 이상 기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다. 그 기도가 모든 일을 지탱해 나가게 하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긍휼을 여는 열쇠며 사탄의 침입을 막는 자물쇠입니다. 새는 날개가 무거워도 그것으로 인해 날 수 있고, 배는 돛이 무거워도 그것으로 인해 항해하고, 기차는 화통이 무거워도 그것으로 인해 질주하고, 비행기는 날개가 무거워도 그것으로 인해 날아갑니다.

성경은 약속의 책입니다. 구약은 옛 약속이고 신약은 새 약속입니다. 성경은 놀라운 약속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해 놓으시고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뭘 기다리실 까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기를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하는 순간 하나님의 액션이 시작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그분이 약속하시고 계획하신 바를,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심에 있어서, 대상자들을 차별하시지 않으십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평신도의 기도를 전혀 차별하시지 않습니다. 오직 단 한 가지 전제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는 것입니다. 찾는다는 것은 기도를 의미하는데, 전심으로 찾고 찾는다는 것은, 기도의 간절성을 의미합니다. 찾으면 찾고, 못 찾으면 그만이고 하는 성의 없는 가벼운 마음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철학자 세네카는 말하기를 “그림의 떡은 떡이 아니요, 붙지 않은 불은 불이 아니며, 간절하지 않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면 놀라운 일들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하나님과 동역 하게 되고 나 자신을 바르게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의 큰일들을 감당하는 능력자가 됩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이 쓰시는 기도의 사람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