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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일을 알고 에4:1-3 (2019.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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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날짜19-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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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일을 알고 에4:1-3
2019. 10. 13 주일 낮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통곡합니다. 유다인들 또한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이 어떤 일입니까?

에3:13 이에 그 조서를 역졸에게 맡겨 왕의 각 지방에 보내니 열두째 달 곧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막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하였고

오늘 본문 사건이 일어난 때는 바사의 아하수에로 왕이 다스리고 있을 때입니다. 그 시기를 따져보면 바사의 초대 왕 고레스의 칙령을 따라 유대인들이 고국으로 귀환한 지 50여년이 지난 뒤입니다.

바사 왕 고레스는 주전 538년에 조서를 내려 “하늘의 신 야훼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게신 하나님이시라. 그 남아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스1:2-4)라고 공포했습니다.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과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아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들이 다 일어나 갔습니다. 그 사람들이 약 5만 명이 되는데 그때 고국에 돌아간 사람들보다 돌아가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때까지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전히 바사 땅에 남아서 살고 있던 유다 사람들이 몰살당할 위기를 당한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되었습니까?

에3장을 보면 하만이라는 사람이 왕의 총애를 받아 총리가 됩니다. 그리하여 대굴 문에 있는 모든 신하들이 다 왕의 명령대로 하만에 꿇어 절합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않고 절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 이외에 그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고 절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만이 이 사실을 알고 분개하여 모르드개 뿐 아니라 바사 내의 모든 유대인들을 죽이고자 간계를 꾸밉니다. 하만이 사실을 왕에게 왜곡해서 보고했습니다. 또한 은 만 달란트를 바쳐 유대인들을 몰살할 계획에 대한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전국에 조서를 보냈습니다. 아달월 13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들을 다 죽이고 그 재산을 빼앗으라는 것입니다. 유다 민족에게 큰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원치 않는 위기가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위기가 찾아올 때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 위기로 인하여 주저앉아 버립니다. 태풍에 고목이 쓰러지듯이 쓰러져서는 다시 일어서지 못합니다. 다른 하나는 그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위험이 닥치고 위기가 닥치면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습니다.

삼상18:30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 싸우러 나오면 그들이 나올 때마다 (이스라엘의 위기 상황) 다윗이 사울의 모든 신하보다 더 지혜롭게 행하매 이에 그의 이름이 심히 귀하게 되니라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왔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살았던 다니엘에게도 위기가 있었습니다.
단2:13 왕의 명령이 내리매 지혜자들은 죽게 되었고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도 죽이려고 찾았더라

이때 다니엘이 어떻게 했습니까? 원망, 불평했습니까? 체념하고 낙심했습니까? 아닙니다.
단2:17-18 이에 다니엘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그 친구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에게 그 일을 알리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사 다니엘과 친구들이 바벨론의 다른 지혜자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하여금 구하게 하니라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단2:46-49 이에 느부갓네살 왕이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명하여 예물과 향품을 그에게 주게 하니라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 왕이 이에 다니엘을 높여 귀한 것이나 선물을 많이 주며 그를 세워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게 하며 또 바벨론 모든 지혜자의 어른을 삼았으며 왕이 또 다니엘의 요구대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세워 바벨론 지방의 일을 다스리게 하였고 다니엘은 왕궁에 있었더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도 위기가 있었습니다.
단3:5-6 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라 하였더라

이때 믿음이 좋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결코 절할 수가 없어서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발각이 되어 왕 앞에 끌려 나갔던 것입니다.
단3:13-14 느부잣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라 말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그리고 회유하기를 다시 기회를 줄 테니까 엎드려 절하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왕의 명령을 거역했더니 왕이 분노해서 풀무 불을 평소보다 7배나 더 뜨겁게 하여 그들을 던져 넣었던 것입니다.

단3:24-25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단3:30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이니라

모르드개도 마찬가지입니다. 왕의 총애를 받는 하만 총리에게 미움을 받아 온 민족이 함께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금식하며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모르드개를 높여 주신 것입니다.

에8:15 모르드개가 푸르고 횐 조복을 입고 큰 금관을 쓰고 자색 가는 베 겉옷을 입고 왕 앞에서 나오니 수산 성이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그 사람의 신앙의 깊이를 알 수 있고, 믿음의 분량도 알 수 있습니다. 건물이 튼튼하게 지어졌는지는 평소에는 잘 알 수 없어도 지진이 일어나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지진이 나면 부실하게 지어진 건물이나 다리들은 모두 무너지지만, 견고하게 잘 지어진 건물은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나무의 뿌리가 깊으면 태풍이 지나가도 쓰러지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도 이와 같이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하나님을 섬긴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 모두가 낙심하고, 절망하고, 포기하는 위기의 때에 오히려 믿음의 진가를 발휘합니다.

평소에는 열심히 살다가도 어려운 일이 닥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공부를 잘하다가도 갑자기 성적이 떨어졌다든지 자신의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타나면 공부를 포기해 버립니다. 가정생활을 할 때나 사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충격적인 사건이 나타나면 의욕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열심히 잘 나오고 하나님을 잘 믿는 것 같다가도 어려운 시험이 닥치면 금방 낙심해서 기도도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가지도 않고 교회를 떠난다든지 불신앙에 빠져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올바른 신앙과 믿음, 성숙한 신앙 인격을 가진 사람은 어려운 일이 닥칠수록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부르짖습니다.

기도는 마치 풍차와 같습니다. 풍차는 바람이 세게 불수록 빨리 돌아가고, 빨리 돌아갈수록 더 많은 양의 전기를 발생시킵니다. 또한 기도는 마치 물레방아와 같습니다. 물살이 세면 셀수록 물레방아가 빨리 돌아가고, 빨리 돌아가는 물레방아에서 동력이 발생합니다. 어려움이 닥칠 때에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사람은 마치 기도의 풍차를 돌리고 기도의 물레방아를 돌리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위기가 오히려 축복이 됩니다.

에스더 4장을 읽어보면 유다 백성들이 처한 상황은 절망적입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는 희한했습니다. 이 사건 전에 모르드개의 사촌 동생 에스더를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로 세워놓으셨던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삼촌이 죽은 후 삼촌의 딸인 에스더를 데려다가 자신의 딸같이 양육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하수에로 왕의 명령에 의해 왕비를 뽑을 때 에스더가 뽑혀서 왕비로 등극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희망을 걸어보았지만 에스더에게도 희망이 없었던 것입니다.

에4:7-11 모르드개가 자기가 당한 모든 일과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고 왕의 금고에 바치기로 한 은의 정확한 액수를 하닥에게 말하고 또 유다인을 진멸하라고 수산 궁에서 내린 조서 초본을 하닥에게 주어 에스더에게 보여 알게 하고 또 그에게 부탁하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 하니 하닥이 돌아와 모르드개의 말을 에스더에게 알리매 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전하기를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하니라

당시의 바사 왕들은 아무나 허락 없이 자신에게 나아오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법을 만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왕이 피살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있기 전에 아하수에로는 자신을 죽이려던 내시 빅단과 데레스를 적발해서 처형했습니다. 여러 정적을 가졌던 페르시아 왕들에게 그 같은 법이 절대로 필요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에스더가 30일 동안 왕에게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아하수에로 왕의 에스더에 대한 사랑이 상당히 식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에스더는 비록 왕후였지만, 다른 후궁들처럼 왕이 불러주기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이 일이 에스더가 왕후에 오른 초기에 일어났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입니다. 그 때에는 에스더가 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고, 그날 밤에라도 왕에게 나아갈 기회가 찾아오리라 기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 당시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가 못했기 때문에, 에스더가 주저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이런 답변을 보냅니다.
에4:13-14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모르드개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인 유다인들을 절대로 멸망당하도록 방치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끝까지 책임지시는 분이신 것을 믿었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자기 백성을 약속한 기간인 70년이 차자 이방왕인 고레스를 사용하여 예루살렘과 유다로 돌아가게 하신 1차 귀환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그러한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역사해 주실 것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게 문제는 단지 “누가 그 도구가 되느냐”였던 것입니다. 포로 귀환의 도구로 이방 왕인 고레스를 사용하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그 도구로 에스더를 초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에스더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든지 그 나라의 최고 가문의 딸이 왕비가 됩니다. 그러나 에스더의 집안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포로민의 가정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나라에서 크게 성공한 집안도 아니었습니다. 학자의 집안도 아니었습니다. 에스더에게는 부모마저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촌 오라버니인 모르드개가 부모역할을 대신 해 주었습니다. 그런 에스더가 당시 세계 최대 제국인 페르시아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이런 때가 올 것을 미리 아시고 이때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에스더를 왕비로 미리 세워두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요셉의 위대함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가 당한 모든 고난을 잘 이기고 애굽의 총리가 된 데에 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총리로 세운 이유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것에 있는 것입니다.

창50:20-21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창50:20-21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에스더의 위대함이 어디에 있습니까? 인물이 예뻐서 바사 제국에서 왕비가 된 것에 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때를 위하여 자신을 왕비로 세웠음을 깨닫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민족을 구원한 것에 있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처음부터 신앙의 위인은 아니었습니다. 에스더의 신앙이 모르드개의 신앙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을 처음부터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지만, 에스더는 모르드개에 의해서 만들어진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모르드개의 강력한 설득에 에스더는 이렇게 결심합니다.

에4: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에스더는 깨닫고 난 뒤 달라졌습니다.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왕을 만나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왕 앞에 나가는 길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길입니다. 그래도 가야만 한다고 결단합니다. 그래서 온 유다인들이 함께 3일을 금식해 달라고 합니다. 자신도 자신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죽으면 죽으리라”하는 용기로 나아가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결단과 용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결단과 용기를 가지고 왕 앞에 나아간 에스더를 지켜주셨습니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부름도 없이 자기 앞에 나온 왕후를 따뜻하게 맞이하게 하셨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슨 소원이라도 들어주겠다고 약속하게 하셨습니다.(5:3) 그래서 유대인들이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천국 가는 사람에게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옥 가는 사람에게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죄 짓고 요령껏 사는 사람들에게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에게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실패하는 사람에게는 용기가 필요치 않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타협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위험과 손해와 박해를 때로는 죽음도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에스더와 같은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영적으로 몰살 위기에 처한 사람이 많습니다. 수많은 영혼이 하나님을 모른 채 죽어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가정들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교회 또한 다음세대가 줄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위기입니다.

에스더가 왕궁에 있을 때에는 유다의 위기를 알 수 없었던 것 같이 우리 또한 교회 안에만 있으면, 이것을 느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를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하셨습니까? 우리는 무엇에 우리의 생명을 걸어야 합니까?

하나님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목숨을 걸 에스더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용기 있게 순종하는 에스더를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바로 오늘의 에스더가 되어서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든든히 세우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귀한 도구로 쓰임 받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