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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엡5:18-21 (2019.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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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날짜19-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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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엡5:18-21
2019. 8. 25 주일 낮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두 가지 큰 명령을 하셨는데 하나는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으라”(행1:4~5)는 말씀입니다.

이 두 가지 명령은 결국 하나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 충만을 받지 않고는 전도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는데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수다는 몇 시간씩 떨면서도 전도는 한 마디도 못합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전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성령 충만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못하는 것입니다.

대학생 선교회(CCC)를 설립한 빌 브라잇 박사는 "내 힘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삶입니다. 성경 말씀을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온전히 순종하느냐에 있습니다. 아무리 말씀을 많이 알아도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어리석은 신앙인입니다.

마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약2:17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내 뜻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입니다. 내 힘으로 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능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우울하고, 허전해질 때가 있습니다. 삶의 무의미와 낙심에 붙잡힐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내가 왜 이럴까?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신데 왜 이렇지?’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안 믿거나 성령이 내 안에 안 계셔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성령 충만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것과 같이 성령님은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 안에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다릅니다. 충만할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께서 나의 지, 정, 의, 삶 전체를 지배하시는 상태를 말합니다. 내 힘이 아닌 성령님이 공급해 주시는 기쁨, 지혜, 능력으로 살아가는 상태를 말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 능력을 줍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온전히 지배하실 때 병이 치유되고 속사람이 강건해집니다. 연약함이 극복됩니다. 방언을 주시어 기도의 차원이 높아집니다. 무엇보다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되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자로 변화됩니다.

내 힘으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힘들어지는 비참한 경험을 해보셨을 것입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렇게도 예수님을 사랑했고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겠다고 말했지만, 현실의 위협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연약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을 받아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지금은 소천하신 온 누리 교회 하용조 목사님에게 자녀를 위하여 어떤 기도를 하십니까? 하고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저는 한 가지만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저희 아이들이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서울에서 몇 만 명이 모이는 초대형교회의 담임목사로 사역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보았을 텐데, 하 목사님의 결론은 성령 충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오늘 본문에서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권면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술을 마신 사람이 술에 취하듯이 성령을 마신 사람이 성령 충만 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에서 성령 충만한 사람과 함께 있다고 성령 충만한 것은 아닙니다. 술집에 있어도 술을 마신 사람만이 술에 취하듯이 성령 충만한 교회에서 성령 충만한 사람과 함께 있어도 성령 충만을 사모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만이 성령 충만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한동 대학교 총장이셨던 고 김영길 장로님의 간증입니다. 1975년 6월, 고 최자실 목사님이 클리블랜드한인교회의 부흥집회 강사로 오셨습니다. 최 목사님은 집회 내내 성령 세례에 관한 설교를 하셨습니다. 설교를 마치자, 최 목사님은 회개하는 통성기도를 드리자고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성도들에게 안수 기도를 해주셨고, 교회 안은 온 회중의 회개 기도로 뜨거웠습니다. 나도 지난날을 돌아보며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드렸습니다. 순간 나는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한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위로부터 오는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 나를 덮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마구 쏟아졌습니다. 그 후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날마다 새로워 찬송을 부르건, 성경을 읽건, 기도를 드리건 언제나 감사의 눈물만 흘러내렸습니다.

또 하나의 큰 변화는 애주가였던 내가 술을 끊게 된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님으로부터 주도를 배운 나는 술을 좋아했고 또 즐겨 마셨습니다. 우리 집의 홈 바에는 각종 양주와 와인들이 즐비했습니다. ‘예수님도 가나 혼인 잔칫집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으니’하고 편하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와 함께 고 한경직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구해 듣게 되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5:18)를 본문으로 한 설교였습니다. “우리는 푯대를 향하여 경주하는 자들입니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멋진 높은 구두를 신고 달리는 선수는 없습니다.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다 벗어 버리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달립니다. 크리스천으로서 덕이 안 되는 모든 세상적인 습관들은 경주하는 자의 발목을 묶는 모래주머니와 같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무거운 습관들을 벗어 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야 합니다.” 건강에도 좋지 않은 술과 담배의 습관들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경주를 방해하는 무거운 짐과 같다는 말씀에 찔림이 있었습니다. 나는 즉시 일어나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던 양주 30여 병을 뚜껑을 따서 모두 싱크대에 쏟아 부었습니다. 그 순간, 술 대신 시원한 생수가 마음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성령 충만함을 체험하였어도 다시 연약한 삶으로 전락될 때가 있습니다. 육신의 본성에 지배당하여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죄는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하고 성령이 지배하지 못하게 막습니다. 그러면 어두움의 권세에 짓눌려 영이 위축되고 영적 슬럼프에 빠지게 됩니다. 성령의 음성을 막고, 성령의 통치를 막는 죄를 쫓아내는 강력한 무기는 바로 회개입니다. 말씀을 붙잡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말씀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회개하면 지속적인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으면 어떻게 변화될까요? 오늘 본문을 보시면, 두 가지 명령이 나오고, 네 가지 성령 충만한 특징이 나옵니다.

1. 술 취하지 말고 성령으로 충만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을 받으라

왜 술 취하지 말아야 합니까? 방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우리를 거룩하게 합니다. John Stott 목사님은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이 문장을 문법적으로 분석을 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문장은 명령문이고, 복수형이며, 수동태이고, 현재형이다.

명령문이란 성령 충만은 받아도 되고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수형이란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간구하면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수동태란 성령 충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이자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현재형이란 성령 충만은 한 번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성령 충만의 특징

오늘 본문을 보시면, 성령 충만한 사람의 특징이 네 가지 나옵니다. 이것은 성령 충만한 사람들의 특징이자, 우리가 성령 충만을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첫째와 넷째는 이웃과 관계된 것이고, 둘째와 셋째는 하나님과 관계된 것입니다.

첫째, 성도들과의 교제입니다.

엡5: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성령 충만의 첫 번째 특징은 성도들이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 회복될 것 같은데, 본문은 그렇게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의 첫 번째 특징은 성도들과의 교제의 회복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은사를 받은 사람이라도 성도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성령 충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요일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부모님 자신에게 효도하는 것보다 형제들끼리 사이좋게 잘 지내는 것을 원할 것입니다. 아무리 부모님에게 맛있는 음식과 좋은 선물을 가지고 와도 형제들끼리 서로 싸우고, 서로 원망하는 사이라면 그 선물은 부모님에게 아무런 기쁨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예수님 안에서 한 가족이 된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고 섬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예배입니다.

엡5:19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성령 충만한 사람은 주님께 노래하고 찬송합니다. 송명희 자매님은 뇌성마비로 온 몸이 비틀려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습이 너무 추하고 고통스러워,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그녀의 영에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 몸이 온전했더라면 네가 나를 의지했겠냐? 그 말씀 한 마디에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군요. 하나님이 나를 알고 계시는군요. 슬픔과 고통에 처했어도, 하나님이 몰라주실 때가 문제지 알아주시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는 탁월한 하늘나라의 시인이 됩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송명희 자매님의 모습을 볼 때 이 시가 마음에 크게 부딪혀 옵니다. 저런 모습을 가지고도 하나님을 사랑하여 찬양의 시를 짓는데 내같이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원망 불평하다니,

그녀의 시가 맞습니다. 장애로 인하여 학교를 못 다녔으니 지식이 없습니다. 뇌성마비로 건강도 없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돈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남이 없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보지 않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남이 듣지 못한 주님의 음성을 들었고, 남이 받지 못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그렇게 처절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전도하며 우리보다 더 뜨겁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어떠한 환경에 처하든지 시를 짓고 찬미하고 신령한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화답하게 됩니다. 마음으로 노래하고 찬송할 수 있게 됩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이 노래는 작사자만 있지 작곡자가 없습니다. 이 노래를 지은 존 뉴톤은 아주 흉악한 노예 상인이었습니다. 하루는 노예선에서 큰 풍랑을 만나 죽게 되었을 때 어머니의 기도를 생각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기도에 응답하셔서 살았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맨발로 복음을 증거합니다. 그가 지은 노래가 어메이징 그레이스입니다.

이 노래에 작곡자가 없는 것은 노예들이 지은 곡이기 때문입니다. 노예들이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앓는 소리를 합니다. 그는 늘 이 노래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나중에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자 노예의 앓는 소리를 작시를 해서 붙인 것입니다. 그렇게 흉악한 사람도 회개하니 노예의 앓는 소리에 노래를 붙이게 됩니다. 노래를 통하여 자기의 죄를 대속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스도 신앙의 위대성은 찬송에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과 찬송은 분리할래야 분리할 수가 없습니다. 찬송을 늘 부르는 성도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4:23~24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새들백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릭 워렌 목사님은 여기서 영은 성령이 아니라 우리의 영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마음이 담기지 않고, 입술로만 노래하고 찬송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예배는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예배입니다. 우리가 완전하지 않은 예배는 드릴 수는 있으나 마음에 없는 예배를 드리면 안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를 드릴 때마다 우리의 입술이 아닌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마음으로 찬양하고, 마음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언제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성령 충만을 받으면 그렇게 됩니다.

셋째, 감사입니다.

엡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절망적인 상황과 환경만 보이니까 감사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환경의 어둠과 절망, 미운 사람, 괴로운 것만 보이니까 원망 불평 탄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의 은총이 보입니다. 송명희 자매처럼.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어도 원망 불평하지 않게 됩니다. 성령 충만하여 주의 음성을 듣고 있는 것이 보이니 감사하게 됩니다.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고, 남이 듣지 못한 음성을 들었고, 남이 받지 못한 사랑을 받았으니 감사합니다.

마음속에 성령이 계시냐 아니냐에 따라서 보는 방향이 달라집니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인간의 눈으로만 보면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특히 사정 사거리가 남한을 향한 탄도 미사일 발사로 인한 안보 불안이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한일관계, 한미관계가 너무 나쁘고, 경제는 최악이고, 청년 실업이 치솟는 등 불안한 요인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지금도 줄기차게 기도하는 하늘나라 백성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백성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좋든 싫든 5만 교회, 10만 주의 종이 있어 기도하고 복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5만 교회, 10만 주의 종이 보이지 않으니까 캄캄한 현실만 보고 절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주 안에서 소망이 있기 때문에 감사, 찬미하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남이 듣지 못하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남이 가지지 못한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기도하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기도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현실이 아무리 칠흑같이 어두워도 우리가 꿈을 가지고 기도할 때 밝은 내일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는 환경의 산물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하면 할수록, 믿음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감사가 저절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만약 내 입술에 감사가 없으면 성령 충만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한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행16:25-26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우리는 누구에게 감사해야 합니까?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창조주 하나님, 내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 나를 구속하시고, 세상 끝 날까지 나를 지켜 주시고 함께하여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부모에게 감사하십시오. 남편에게, 아내에게, 형제에게, 친구에게 감사합시오. 또한 조국이 있음을 감사하십시오. 이 어려운 역사적 현실에서, 분단된 조국의 현실 속에서도 이 조국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십시오. 또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감사하십시오. 교회는 기도의 공동체요 사랑의 공동체요, 봉사의 공동체요, 예배의 공동체요, 구제의 공동체요 선교와 훈련의 공동체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넷째, 복종입니다.

엡5: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피차 복종하는 것입니다. 다시 인간관계로 돌아왔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인간관계를 중요시합니다. 이 본문 다음에, 부부 관계, 부모와 자식 관계, 상전과 종의 관계가 연속해서 나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이런 관계에서 피차 복종하는 삶을 삽니다.

성령 충만할 때 피차 복종하게 됩니다. 기쁨으로 순종하게 됩니다.
고후4:5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순종을 억지로 하면 괴롭습니다. 웃는 것도 억지로 하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릅니다. 얼굴에 안면 마비가 옵니다. 그러나 마음이 즐거워서 웃으면 건강해집니다. 웃으면 복이 오고, 건강이 옵니다. 순종도 성령 충만을 받아서 마음에서 우러나서 기쁨으로 순종하십시오. 순종할 때 기쁨으로 하지 않으면 역효과만 생깁니다. 기쁨으로 하십시오. 지배는 사단의 속성이요, 섬김은 그리스도의 속성입니다.

고후1:24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 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할 때 지혜로워지며, 성령 충만할 때 기쁨이 충만해지며, 성령 충만할 때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게 되며, 성령 충만하게 되면 범사에 감사하게 되며, 성령 충만을 받으면 피차 복종하는 놀라운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늘 성령 충만을 사모하며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늘 성령 충만한 삶으로 항상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