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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대하20:1-13 (2019.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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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날짜19-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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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대하20:1-13
2019. 8. 18 주일 낮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호사밧은 남 유다 왕국의 4대 왕입니다. 그는 히스기야, 요시야와 더불어 3대 성군으로 불릴 정도로 훌륭한 왕으로 전심으로 야훼 하나님의 도를 행하면서, 전국의 모든 우상 제단을 제거하고 남색 하는 자들을 모두 축출하며 온 나라에 율법 교육을 실시하는 영적 각성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유다 사방의 모든 나라에 두려움을 주사 야호사밧과 싸우지 못하게 하시며 주변 나라들의 조공을 받으며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마음씨가 착한 여호사밧은 형제 나라인 북 이스라엘의 아합 왕과 화친했습니다. 아합 왕이 어떤 사람입니까?

왕상16:30-33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야훼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야훼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여호사밧은 이렇게 악한 아합 왕의 딸 아달랴를 며느리로 받아들였습니다. 정략결혼을 시킨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합의 꾐에 빠져 아합을 도와 아람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 전쟁에서 아합은 죽고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겨우 죽음을 모면했습니다. 이 전쟁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돌아온 여호사밧을 선견자 예후가 맞이했습니다.

대하19:2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야훼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야훼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예후를 통해 여호사밧의 죄를 분명히 지적하셨습니다. 그것은 악한 자를 돕고 야훼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한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이 맺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반드시 지켜야할 기본원칙을 정하셨습니다. 그것은 악한 자를 돕고 야훼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이방인과 교통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마음이 편협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자와 손을 잡으면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에 동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호사밧을 보십시오. 그가 악한 왕 아합과 손을 잡으니까 자신이 원치 않는 전쟁에 동참하여 죽을 뻔 했습니다.

고후6:14-16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그런데 우리는 이 하나님의 절대 원칙을 지키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여호사밧이 남과 북은 한 민족이니까 우리 민족끼리 사이좋게 지내야지 하고 하나님의 원칙을 지키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 또한 갖가지 이유를 들어서 하나님의 절대원칙을 피해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일에는 그 어떤 경우에도 예외조항이 있을 수 없음을 새롭게 명심하는 시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후를 통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전쟁에서 여호사밧을 살리신 이유도 말씀하셨습니다.

대하19:3 그러나 왕에게 선한 일도 있으니 이는 왕이 아세라 목상들을 이 땅에서 없이 하고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을 찾음이니이다

즉 왕이 아세라 목상들을 유다 땅에서 없이하고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을 찾은 선한 일을 기억하여 그를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살리셨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사밧은 이 하나님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친히 브엘세바에서 에브라임 산지까지 민간을 순행하며 백성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운동을 폈습니다. 이는 여호사밧의 신앙이 얼마나 순전했는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악한 자를 돕고 야훼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한 죄로 인하여 죽어 마땅한 자신을 살려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새로운 마음으로 신앙회복에 온 마음을 쏟는 그의 모습이 참 아름답게 보입니다.

또한 그는 유다 온 나라 견고한 성읍에 재판관들을 세웠습니다. 이는 백성들의 억울함을 신속하게 해결하고자 함입니다. 민간을 친히 순행하면서 그가 느낀 것이 신앙회복과 함께 공의대로 백성을 다스려야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는 성군으로서의 새 출발을 의미합니다. 여호사밧은 백성들 위에 재판관을 세우고 분명히 경고했습니다.

대하19:6-7 재판관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재판하는 것이 사람을 위하여 할 것인지 야훼를 위하여 할 것인지를 잘 살피라 너희가 재판할 때에 야훼께서 너희와 함께 하심이니라 그런즉 너희는 야훼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 우리의 하나님 야훼께서는 사람들 앞에서 불의함도 없으시고 치우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는 일도 없으시니라 하니라

이렇게 새롭게 출발하려는 여호사밧 왕에게 큰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과 마온 사람이 동맹을 하여 여호사밧을 치러 올라온 것입니다. 그때가 언제입니까?

대하19:2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야훼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야훼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이 말씀이 있은 이후입니다. 그렇다면 그 전에는 어떠했습니까?
대하17:10 야훼께서 유다 사방의 모든 나라에 두려움을 주사 여호사밧과 싸우지 못하게 하시매

하나님을 잘 섬길 때에는 전쟁이 없이 평화롭게 살던 여호사밧이 악한 자를 돕고 야훼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니까 징계가 임한 것입니다.

대하20:1-3 그 후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마온 사람들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고자 한지라 어떤 사람이 와서 여호사밧에게 전하여 이르되 큰 무리가 바다 저쪽 아람에서 왕을 치러 오는데 이제 하사손다말 곧 엔게디에 있나이다 하니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야훼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연합군의 침략 소식을 들은 여호사밧은 심히 두려웠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이때 인간적인 방법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즉시 야훼께로 낯을 향하여 기도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을 명했습니다. 즉 최후의 방법으로 기도한 것이 아니라 최선의 방법으로 기도를 한 것입니다.
대하20:6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야훼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절대 주권으로 온 천하를 다스리시는 만군의 야훼이십니다. 그는 그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대하20:9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전염병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성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성전 앞과 주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에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

하나님의 이 약속을 붙들고 야훼의 성전 앞에서 기도하기를
대하20:12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그는 이 기도에서 두 가지 고충을 토로합니다.

첫째로,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다고 했습니다.
능력문제로 고민합니다. 우리 또한 살아오면서 무능력으로 인해 얼마나 좌절합니까. 사업 문제, 자식 문제, 돈 문제, 질병 문제 앞에서 능력 없음으로 인하여 좌절합니다.

두 번째는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지혜의 문제입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할지 알지 못해서 답답한 것입니다. 나서야할 때와 물러가야할 때를 아는 것, 싸워야 할 때와 양보해야할 때를 아는 것, 하나님이 나서주시길 의지해야할 때와 내가 나서야 할 때를 아는 것의 어려움, 겸손히 침묵해야 할 때와 진리를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싸워야할 때를 알지 못하는 어려움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능력과 지혜 문제에 직면합니다. 지혜가 부족하고 판단 능력이 부족할 때 무슨 일을 결정하면 최악의 순간에 최악의 결단을 하게 되고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법입니다.

‘능력과 지혜’ 문제로 고민하는 것은 여호사밧 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야곱은 남보다 빠른 성공과 더 큰 축복에 눈이 멀어 배고픈 형님을 이용해서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사고, 눈 먼 아버지를 속여서 축복을 강탈한 결과 평생 쫓기고, 친척에게 이용당하고 자식들에게 속임 당하는 인생을 산 것도 하나님의 지혜 대신에 세상 꾀로 만사를 해결하려는 데서 비롯된 일입니다. 다니엘이 생사가 걸린 과제를 놓고 지혜 없음과 무능력 문제로 엎드렸고, 에스더도 유대인의 학살 위기에서 지혜와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이 지혜와 능력의 원천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외칩니다.
대하20:12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어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우리 인생의 방향과 목적이 결정됩니다.

예일 대학교의 역사신학자인 펠리칸(Jaroslav Pelikan) 박사는 “땅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비관주의자가 되고,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낙관주의자가 된다. 땅을 바라보는 사람은 우울한 사람이 되고,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은 밝고 즐거운 사람이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를 바라보며 살고 계십니까? 미국의 칼럼니스트 조지 스위팅(George Sweeting)은 “당신의 인생에 폭풍우가 몰아닥치면, 하늘을 쳐다보고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말했습니다. 어려움을 당하면 당할수록 더욱 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무엇인지 깨달아야겠습니다.

시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지혜와 능력문제로 고민하고 있습니까?
“오직 주님만 바라보나이다!”라고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리십시오!
하나님을 바라보는 순간이 바로 지혜와 능력의 부족으로 허덕이는 우리에게 기적이 일어나는 시점입니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길을 보여주시고, 해결한 능력을 주십니다.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하는 우리에게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대하20:15-17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야훼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내일 너희는 그들에게로 내려가라 그들이 시스 고개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그들을 만나려니와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야훼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야훼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상황과 문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하는 것입니다.

전남 고흥에 있는 고흥교회 조대형 장로님의 간증입니다. 조대형 장로님은 해군 군의관으로 있다가 예편을 하고 외과병원을 개원했습니다. 젊은 의사는 자신의 실력을 믿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술하고 진료하여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개원한지 3년이 지나 자신이 37세가 된 어느 날, 너무나 피로를 많이 느끼게 되어 진단을 받은 결과는 간암이었습니다. 3개월 시한부 인생이 된 것입니다.

젊은 의사는 절망했습니다. 아내와 자녀들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서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잊고 있던 신앙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인간적인 방법을 다 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해야겠다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돈만 따르던 내게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면 의사로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아침저녁으로 교회당에 가서 매일 뜨거운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 중에 몸이 뜨거워지면서 성령의 불을 체험했습니다. 성령의 불이 마치 자신의 몸을 샅샅이 태우는 것 같았습니다. 그 길로 암은 사라졌습니다. 그는 전남 고흥으로 가서 ‘조 외과의원’을 개업하고 어려운 환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고, 무료로 진료하고, 치료해주어 ‘고흥의 슈바이처’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지금도 위기 때에 도우신 하나님께 자신의 서원을 성실하게 지키며, 고흥교회의 장로로 섬기고 있습니다.

생명을 건 진실한 기도에는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야고보서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세상적인 방법에도 마음을 두고, 하나님께도 마음을 두는 두 마음을 품으면 하나님이 듣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기도 응답을 받은 여호사밧 왕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도 야훼 앞에 엎드려 야훼께 경배하고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야훼를 찬송한 후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갔습니다.

대하20:20-23 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야훼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야훼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야훼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야훼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여호사밧 군대는 칼 한번 휘두르지 않고 오직 찬송으로 대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이 연합군이 있던 지역을 가보니 온 들판이 적군의 시체로 가득한 데다 그 연합군들이 지니고 있던 재물과 무기, 보물이 너무 많아 한 번에 가져갈 수 없어 4일 동안 운반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 일로 인해서 이방 모든 나라들이 여호와를 두려워하므로 나라가 태평하게 되었습니다.

대하20:29-30 이방 모든 나라가 야훼께서 이스라엘의 적군을 치셨다 함을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하였으니 이는 그의 하나님이 사방에서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음이더라

여러분, 여러분이 큰 문제, 큰 역경을 당할 때 그 문제와 역경을 보지 마시고 야훼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중에 마음에 평안과 확신이 오거든 찬양하고 감사하십시오.

머린 R. 캐로더스 목사님이 쓰신 ‘찬송생활의 응답’이란 책에는 이런 간증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어느 유명한 대학교수 부부는 평생 신실한 신앙생활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16살짜리 딸이 갑자기 탈선하더니 어느 유부남을 사랑합니다. 마약까지 복용합니다. 아무리 부모가 울고불고 말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마약복용으로 체포되어 소년원까지 가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그 유부남을 결코 잊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유부남도 딸이 감옥에 나오면 다시 만나겠다고 합니다. 그 대학교수 부부는 너무나 절망에 빠져서 캐로더스 목사님을 찾아와 호소했습니다. 목사님은 그 교수 부부에게 역경 중에서 무조건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그 교수는 목사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무조건 하나님께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딸이 속을 태울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했습니다. 5개월 후에 그 교수 부부가 찾아왔는데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얼굴에 기쁨이 충만하여 있습니다. 소년원에 있던 딸이 어느 날 갑자기 기도하기 시작하고 깨어지고 회개했다는 소식과 그 남자와도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어느 날 캐로더스 목사님이 설교하다가 보니 어느 소녀가 맨 앞줄에 앉아 있는데 얼굴이 대단히 빛나 보였습니다. 기쁨이 넘치어 설교 중에 아멘을 계속합니다. 예배가 끝나자 그 소녀는 목사님께 와서 자기가 그 교수의 딸임을 고백하더랍니다.

역경 중에 감사의 능력이 가져다 준 열매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려움을 만날 때 문제와 어려움을 볼 것이 아니라 오직 주만 바라보십시오. 역경 중에 더욱 감사하십시오. 그때 큰 능력의 손길이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승리를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위기 상황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기도한 것이 아니라 최선의 수단으로 기도하고 찬양을 한 여호사밧을 하나님께서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나라를 더욱 견고히 세워 주셨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대하20:35-37 유다 왕 여호사밧이 나중에 이스라엘 왕 (아합 왕의 아들) 아하시야와 교제하였는데 아하시야는 심히 악을 행하는 자였더라 두 왕이 서로 연합하고 배를 만들어 다시스로 보내고자 하여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만들었더니 마레사 사람 도다와후의 아들 엘리에셀이 여호사밧을 향하여 예언하여 이르되 왕이 아하시야와 교제하므로 여호와께서 왕이 지은 것들을 파하시리라 하더니 이에 그 배들이 부서져서 다시스로 가지 못하였더라

아합과의 동맹으로 하나님 앞에 위기를 경험했던 그가 다시 아합의 아들과 교제를 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의 이 모습이 우리의 마음을 참으로 아프게 합니다. 여호사밧은 왜 그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까요? 무엇보다도 그는 악한 자와 교제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심각한 죄인지를 깊이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남북이 한 민족이니까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롭게 지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하는 생각이 그의 마음에서 늘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미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책망을 들었으면서도 자기 생각을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국가를 더욱 부강하게 하고 더 나아가 다윗 왕국의 영화를 되찾으려면 북이스라엘과 손을 잡지 않으면 안된다는 그의 생각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입니다.

여호사밧의 모습은 사실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원칙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이 정도는 괜찮을거야’ 라고 합리화시킵니다. 그런데 한번 그렇게 시작된 연결고리는 우리를 늘 곤경에 빠지게 합니다. 여호사밧을 보십시오. 한번 아합과 손을 잡고 아합의 딸을 며느리로 들여왔으니 아합의 아들과 손잡는 일은 어찌보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여호사밧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내 생각과 행동을 바꾸어야 합니다. 내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았던 사사시대는 늘 어려움을 당했지만, 야훼 말씀에 철저히 순종했던 여호수아는 정복이 불가능하게 보였던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승리를 했습니다. 히스기야, 요시야와 더불어 3대 성군으로 불릴 정도로 훌륭한 왕으로 전심으로 야훼 하나님의 도를 행했던 여호사밧이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지 못했을 때 징계로 전쟁이 오고, 후손들이 아합의 길을 감으로 징계를 받았던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여호사밧의 요소를 발견하여 이 시간 철저히 돌이킴으로 복을 받고 귀하게 쓰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