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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막5:25-34 (2019.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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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날짜19-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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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막5:25-34
2019. 8. 4 주일 낮

막5:25-26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이 한 구절 속에 이 여인의 온갖 아픔이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혈루병은 하혈이 멈추지 않는 병입니다. 이 여인은 무려 열두 해를 혈루병으로 고생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병을 고쳐보려고 많은 의사들을 찾아가 보았으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갈 뿐이었습니다. 병을 고쳐보려고 재산도 다 허비하였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레위기 15장을 보면 혈루병이 있는 사람이 앉은 자리가 부정하고, 누웠던 자리도 부정하고, 만지는 사람도 부정해 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위생여건이 열악한 시대가 아니었습니까? 옷을 자주 갈아입을 수 있었겠습니까? 목욕을 자주할 수 있는 상황이었겠습니까? 이천년전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제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목욕을 자주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시골에 한 청년이 장가를 가게 되었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읍내 목욕탕에서 목욕을 합니다. 목욕탕에 들어가 보니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습니다. 그래서 하는 얘기가 "야~ 내일 장가가는 놈들 되게 많네" 하더랍니다.

병들고 나면 사람이 그리운 법인데 이 여인은 사람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부정해 지니까요. 그래서 행여 사람이 가까이 오면 입에다 손을 대고 나는 부정하다 타메 타메를 외쳐야 했던 여인이었습니다.

내적인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많은 환자들이 환부를 드러내 보이며 주님 앞에 치료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 내 눈이 보이지 않습니다.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병환자들도 내 환부가 썩어 들어갑니다. 주님 나를 고쳐주십시오. 앉은뱅이들도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주님 앞에 요청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부끄러운 자신의 질병을 주님 앞에 얘기할 수도 없었고 환부를 보일 수는 더더욱 없었던 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아픔이 얼마나 큰지 아십니까? 사회적으로 성공했고 교회에서도 목사님과 교우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은 남편이 성병을 가지고 집에 온 것입니다. 고민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하늘처럼 생각합니다. 드러내놓고 한바탕 싸움을 할 수도 없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가정의 평화를 지켜나가자니 미칠 지경입니다. 그래서 목사님께 전화해서 "목사님 아플 때 아프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게 행복인줄 알았어요. 억울할 때 억울하다고 울 수 있는 게 행복인줄 알았어요. 아파도 아프다고 얘기할 수가 없어요. 드러내놓고 한바탕 소리 지를 수도 없어요. 이때는 어떡하면 좋지요?"

존경과 체통을 유지하고 살아가지만 속이 썩어 들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친정식구에게조차 드러낼 수 없는 아픔들, 친구에게도 의논할 수 없는 아픔들이 우리 가운데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본문의 혈루병 여인의 얘기는 오늘 현대인들의 얘기요, 나의 얘기요, 여러분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던 여인이 깨끗이 치료 받았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1. 듣는 것의 중요성입니다.

막5: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예수님이란 분이 계신데 예수님께 가면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된다고 하더라.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섰다. 소경들이 눈을 떴다. 나병환자도 깨끗함을 받았다. 죽은 자도 살아났다.

예수의 소문 가운데 좋은 소문을 들었다고 하는 것이 복입니다. 당시에 예수의 소문이 좋은 소문만 있었던 것이 아니거든요. 미쳤다고 하더라. 이단자라고 하더라.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더라. 이런 못된 소문이 들으면 구원과 거리가 멀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오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의 소문을 들으러 오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도 세상 소리를 듣고,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와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듣고 마음에 새기면 기적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신11:2-6 너희의 자녀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였으나 너희가 오늘날 기억할 것은 너희의 하나님 야훼의 교훈과 그의 위엄과 그의 강한 손과 펴신 팔과 애굽에서 그 왕 바로와 그 전국에 행하신 이적과 기사와 또 여호와께서 애굽 군대와 그 말과 그 병거에 행하신 일 곧 그들이 너희를 뒤쫓을 때에 홍해 물로 그들을 덮어 멸하사 오늘까지 이른 것과 또 너희가 이곳에 이르기까지 광야에서 너희에게 행하신 일과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에게 하신 일 곧 땅 이 입을 벌려서 그들과 그들의 가족과 그들의 장막과 그들을 따르는 온 이스라엘의 한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삼키게 하신 일이라

모세가 왜 이 말을 하는 것입니까? 여호수아가 정복해야 할 가나안은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더 강한 애굽에서 너를 구원하신 야훼를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적의 강함을 보지 말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이 말을 마음에 새기고 대적의 강함을 보지 않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함으로 가나안 정복전쟁에서 33전 33승으로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소문을 정확하게 잘 내야 합니다. 분명한 소문, 분명한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소문이 분명하지 못하면 사람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예수님만 만나면 어떤 병이라도 고침 받는다. 예수만 믿으면 반드시 구원 받는다. 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대로 믿으면 기적이 일어난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내시는 길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대로 믿어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대로 오늘날도 기적을 행하신다. 이와같이 분명하게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말씀을 어떻게 전하나요? 성경대로 전하지 않습니다. 병든 자를 예수님이 치료하신다는 것을 전하지 않아요. 우리의 모든 문제를 주님이 해결해 주신다고 전하지 않아요. 예수를 믿으면 죄 사함 받아 구원을 받아 천국 백성이 된다는 것만 전해요. 그래서 병든 자가 치료받지 못하고, 절망에 빠진 자가 해결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믿어야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만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죄와 질병, 가난, 저주에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부분적인 구원이 아닌, 온전한 구원, 전인적인 구원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의 소문을 들었을 때 이 여인의 상황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다. 있던 재산 다 허비했다. 아무 효험이 없었다"

이 여인이 예수님께 찾아왔을 때는 재산을 다 탕진한 다음이었습니다. 아직도 재산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었으면 오늘은 이 병원 내일은 저 병원, 오늘은 이 의사를 내일은 저 의사를 찾아다녀 보았을 것입니다. 이제는 세상에 붙들 썩을 끈 하나 없었습니다.
예수님 밖에는 희망이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손을 잡았다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잡지 못한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옷자락을 붙들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아십니까?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화려한 옷을 붙들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옷은 화려하지 못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힘 있는 옷을 붙들어 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옷은 권력의 옷이 아니었습니다. 자색옷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옷을 붙들기만 하면 거기엔 신비한 능력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옷은 신비한 옷입니다. 붙들면 구원함을 받습니다. 붙들면 치료함을 받습니다. 붙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붙들면 하늘 문이 열려지는 놀라운 신비한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옷자락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옷은 몸을 감싸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곳에 와서 다른 것을 만지려고 하면 안됩니다.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셔야 합니다. 이곳에 와서조차 다른 것을 붙들려고 하면 안됩니다. 주님의 옷자락을 붙들고 돌아가셔야 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손, 모태에서 여러분을 빚어 만드신 사랑의 손, 능력의 손, 역사를 운행하는 그 손을 붙들고 세상으로 다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곳에 올 때마다 주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돌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막5: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믿음) 함일러라

하나님은 믿음의 분량대로 역사해 주십니다.
백부장.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리하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
마8: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막1:40-42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니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회당장 야이로
막5:23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

막5:41-42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12해를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기만 하면 나으리라. 이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는 순간에 혈루의 근원이 말라 버렸습니다.
막5: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반드시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바로 그 자리에서 나았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나았습니다. 하나님의 기적,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2. 장벽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혈루증 여인에게는 예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여러 장벽이 있었습니다.

첫째로 율법의 장벽입니다. 율법에 의하면 혈루병은 다른 사람을 만지면 다른 사람이 부정해 지는 병입니다. 따라서 사람들 앞에 나아갈 수 없는 병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혼자 계신 것이 아닙니다. 그 곁에는 수많은 무리들이 밀고 당기고 있습니다. 수많은 무리라는 장벽이 이 여인으로 하여금 예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여인은 무려 12년간의 긴 출혈로 몸이 약할대로 약해졌고 어지럼증이 심합니다. 연약함의 장벽이 예수님께 나아갈 수 없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수많은 남자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댄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앞에 남자들이 따라가고, 이어서 여인들이 따라가고,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따라갔다고 합니다. 관습의 장벽입니다. 그러니 혈루증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남자들을 헤치고 앞으로 가야 했겠습니까? 더구나 12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피골이 상접한 여인이 말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갖가지 장벽을 뛰어넘어 예수님께 나아가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던 것입니다.

막5:30-31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혈루증 여인이 갖가지 장벽을 뛰어넘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는 순간 예수님의 몸에서 능력이 나갔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당깁니다. 믿음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혈루증 여인이 손을 댄 것은 모르셨지만, 예수님의 몸에서 능력이 빠져 나간 것은 아셨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믿음으로 손을 댄 것을 아신 것입니다. 그래서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제자들이 반문 합니다. 주여 많은 사람이 밀치고 당기는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몸에 손을 대었지만, 그 사람들은 단지 호기심으로 손을 댄 것 뿐입니다.

3. 간증의 중요성입니다.

막5:32-33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시니 여자가 제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짜온대

본문을 보면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짜온대" 같은 사건을 누가복음에 보면 "손댄 연고와 낫게 된 경위를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사람들이 자기 앞을 지나가기라도 하면 언제나 타메 타메 타메라는 말 밖에 외칠 줄 모르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뒤로 와서 주님의 옷자락을 잡자 즉시 혈루의 근원이 말라버린 이 여인이 더 이상 타메 나는 불결하다를 외치는 것 아니고 나는 깨끗해 졌다 나는 나았다. 지금 외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세상에 절망을 안고 살아가시는 분이 계십니까? 주님의 사랑에 접촉되는 순간 내게 희망이 있다고 외치게 될 것입니다. 길이 보이지 않아서 울던 분이 계십니까? 주님의 사랑에 접촉되는 순간 길을 발견하게 됐다고 외치게 될 것입니다. 죽게 생겼던 분이 계십니까? 이제 살게 생겼다고 외치게 될 것입니다. 세상 노래만 부르던 분이 계십니까? 주님의 사랑에 접촉되는 순간 하늘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이 여인이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순간, 자신의 몸에서 능력이 나간 것을 주님이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순간, 이 여인은 혈루 근원이 마른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부끄러운 병을 앓던 여인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모른 척 하고 지나가면 좋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꼭 확인시켜 주시기를 원하셨다면 사람들 앞에서 이 여인의 체면을 좀 생각해서 윙크라도 한번 슬쩍하고 지나갔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 기어이 이 여인을 찾아냅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댔느냐?

기억하십시오. 주님이 우리를 찾으시는 이유는 우리에게 수치와 창피를 안겨주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간증의 효과를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간증이 무엇입니까? 자신이 경험한 것을 입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남에게 전도하는 것, 남도 구원하지만, 내가 자꾸 간증하므로 내 구원이 확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여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입으로 병이 나은 것을 시인하게 하시는 것은 믿음으로 나았으나, 마귀가 역사하면 병이 도로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시던 발걸음을 멈추고 입으로 시인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입으로 시인하면 마귀가 더 이상 역사할 수 없습니다. 왜요?
마18: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입으로 땅에서 묶으면 하나님이 하늘에서 묶어서 마귀가 더 이상 틈을 탈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묶어 주신 것을 마귀가 어떻게 풀 수 있단 말입니까?

만일 하늘에서 묶어 주시지 않으면 마귀가 풀려고 애씁니다. 마귀가 속입니다. 네가 나은 것은 일시적인 감정적인 흥분이다. 일이 되려고 하다보니까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다. 이 말에 속아서 그런가하면 마귀가 본격적으로 역사하여 다시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생사가 달린 문제입니다. 여인이 허약한 믿음 가운데 치료를 받았기에, 집에 돌아가서도 계속 건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간증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여인이 몰래 와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을 때 병이 나았습니다. 그러나 간증을 하기 전에는 하늘에서 묶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병이 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간증하고 나니까, 하나님이 하늘에서 묶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묶어 주신 것을 마귀가 어떻게 풉니까? 절대로 못 푸는 것입니다.

잠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누가 내 옷을 만졌느냐? 그때 제자들은 뭐라고 대답합니까? 누가 복음에 의하면 그렇게 대답하던 제자가 베드로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사람이 밀고 밀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스쳐지나가다가 예수님의 옷을 만졌겠지요. 그런데 누구를 찾는단 말입니까?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에워싸 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도 옹위하여 길을 가고 있었지만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그때 제자들처럼 의미 없는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혈루병 여인처럼 믿음으로 손을 대었더니 깨끗이 낫게 되었다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주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바로 믿음으로 손을 댄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예수님 가까이 따랐느냐, 예수님의 옷을 힘차게 꽉 붙들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손을 댄 그 여인을 향하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찌어다."

주님은 이 여인을 ‘딸’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는 피상적인 만남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딸’이라는 특별한 부녀관계를 맺게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딸’이라고 불리면 다 된 것이 아닙니까? 내가 주님의 딸인데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 먹을 것을 걱정하겠습니까? 질병을 걱정하겠습니까? 살아갈 일을 걱정하겠습니까? 믿음의 손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자마다 이런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마음의 고통을 안고 나오신 분이 계십니까? 환경과 삶에 무거운 짐을 지고 나오신 분이 계십니까? 누구에게도 내어놓을 수 없는 문제를 갖고 나오신 분이 계십니까? 그 손으로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치료 받고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주님이 주시는 음성이 있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오늘 여러분 모두가 이런 음성을 듣고 돌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