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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행19:1-7 (2019.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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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날짜19-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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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행19:1-7
2019. 7. 7 주일 낮

오늘 본문은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하던 사울이 예수를 믿고 성령 충만을 받자 변화되어 복음을 증거하는 사도가 되어 에베소에 이르렀을 때의 기록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갔더니 몇 명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질문을 받은 에베소 성도들이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고 질문했습니다. 그랬더니 ‘요한의 세례니라’ 했습니다.

여러분, 요한의 세례는 어떤 세례입니까?
막1:4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요한이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요1:31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예수님)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에베소 성도들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요한의 세례와 주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는 다릅니다.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이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는 세례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나의 모든 죄를 씻어 주셨고, 부활하심으로 나를 의롭게 하셨다는 것을 믿어,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살기를 원한다는 고백이 담긴 세례입니다.

그래서 에베소 성도들은 예수님과의 연합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던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이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습니다. 그 때 성령 받은 사람들이 대략 열 두 사람쯤 되었습니다.

그 때 바울에게 안수 받고 성령 받은 자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이미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그 사실은 1절에서 그들을 제자라고 했던 대목에서 알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제자라고 하면 12제자를 말하지만, 사도 시대에 들어오면서 12제자는 사도라고 불렀고, 제자라고 하면 일반 성도들을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의 안수를 받고 성령을 받은 자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 세례를 받지 않고 예수를 믿을 수도 있습니다. 성령 세례를 받지 않고도 선교사로 헌신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예수를 구주로 믿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시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도 바울이 예수를 믿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한 것은 내주 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것으로 머물면 안 되고 반드시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기도의 사도라는 별명을 가진 존 하이드가 인도 선교사로 헌신하여 인도로 가는 배를 타고 갈 때였습니다. 인도로 가는 배에서 그는 정말 훌륭한 선교사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런데 선실에 내려와 보니 아버지의 친구이신 존경하는 목사님으로부터 전보가 도착해 있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으로 그는 즉시 전보를 읽어 보았습니다.

존 하이드, 네가 성령으로 충만해 질 때까지 너를 위한 기도를 쉬지 않겠다.

전보를 읽은 존 하이드는 맹렬한 분노가 마음에서 일어나서 손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그는 너무 화가 치밀어 전보를 구겨서 바닥에 던져버렸습니다. 그리고 화를 식히기 위해 갑판 위로 올라갔습니다. 존 하이드는 분을 주체하지 못하여 중얼거렸습니다.

“네가 성령으로 충만해 질 때까지 너를 위한 기도를 쉬지 않겠다니. 나는 선교사로 헌신해서 인도에 가고 있어. 그것도 앞길이 탄탄히 보장된 대학 교수직의 초빙을 거절하고 척박한 인도 선교사로 자원했어. 그런 저런 선교사가 아닌 최고의 선교사가 되기 위해 인도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그런 나를 성령 충만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다니.”

그는 아버지의 친구 목사님이 인도 선교사로 헌신해서 떠나는 자신을 성령 충만하지 않다고 본 것이 너무 분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평소 존경하던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헛된 소리가 아니라면, 그 목사님이 내가 성령으로 충만해질 때까지 기도하기를 쉬지 않겠다고 했다면 그 목사님의 말씀에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부리나케 다시 선실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구겨서 던져버린 전보를 펴서 다시 읽고 또 읽었습니다.

‘존 하이드, 네가 성령으로 충만해 질 때까지 너를 위한 기도를 쉬지 않겠다.’

그의 마음은 여전히 괴로웠지만, 마침내 자신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워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하는 순간 모든 것들이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가 품었던 것이 이기적인 야망이라는 사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겉으로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 같았지만 밑바닥에는 흉물스러운 자아의 추구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주님을 위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고 교회를 위한 헌신과 봉사 충성에도 자아가 역사할 수 있습니다. 탁월한 설교자, 큰 교회 담임목사, 선교사가 된다고 해도 그것이 주님을 위한 것이 아닌 자기만족 자기 자랑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닌 자기만족, 자기 자랑을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 알아야 합니다.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것도 무서운 죄인데, 그것이 좋게 포장되면 더더욱 심각해집니다.

‘저는 배가 인도 항구에 닿기 전까지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말리라 결심하고 더욱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제가 인도에서 보게 될 언어 시험에서 낙방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봉사하는 무명의 선교사가 되어도 좋으니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 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 영적 몸부림은 항해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위대한 존 하이드 선교사가 태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 믿고 구원 받은 것에 머무르면 안됩니다. 성령 충만을 받아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임으로 하나님이 마음껏 쓰실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자랑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입니다. 사도 바울이 날마다 성령 충만을 받아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니까 하나님이 마음껏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도 바울을 마음껏 사용하신 것은 그가 명문가 출신이고,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율법의 대가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율법의 의로 흠이 없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날마다 자신을 죽임으로 예수님만 드러내었기 때문입니다.

옛 사람이 죽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이 쓰실 수가 없습니다.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아 자기 의와 자기주장으로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이 쓰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은 옛 사람이 죽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내가 죽고자 아무리 노력해도 옛 사람이 결코 죽지 않습니다. 죽은 척 할 뿐입니다. 죽은 시늉만 할 뿐입니다. 힘으로도 되지 않고 능으로도 되지 않고 오직 성령으로만 됩니다.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언제 알 수가 있습니까? 억울하고 힘든 일을 당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의 간증을 소개합니다. 저도 터무니없는 소문에 애가 탔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제대로 숨을 쉴 수도 없고, 당장 소문을 낸 당사자들을 찾아가 헛소문을 퍼뜨린 이유를 따지고, 개인적인 사과는 물론 공개적인 사과까지 받아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괴로운 순간 든 생각이 있었습니다.
“바로 지금이 내가 죽어야 하는 때다.”

그렇지만 도무지 안되어서 무릎을 꿇고 몸부림치며 기도하는데 내 안에서 이런 고백이 터져 나왔습니다.
“하나님, 저는 죽었습니다.”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입으로 시인하게 역사해 주신 것입니다.
롬6:4-5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하나님, 저는 이미 죽었습니다.”
두 번, 세 번, 네 번,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계속 이 고백을 했습니다. 열 번째 이 고백을 반복하는 순간 죽임이 임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은 내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로 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죽음은 참으로 고요하고 평안했습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숨을 쉴 수도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습니다. 죽음이 임하니까 더 이상 내 안에 미움도 섭섭함도 억울함도 분노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죽음이 임하여 정말 죽은 자로서 문제를 보게 된 것입니다.

나는 비로소 “주님, 이제 제게 주님의 마음을 주세요.”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통곡이 터져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슬피 울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말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팠습니다. 울다가 지쳐서 탈진 상태에 이르렀을 때 ‘내가 지금 왜 이렇게 울고 있지?’라는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나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느냐?”

나는 그제야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헛소문을 퍼뜨려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교인을 바라보시며 통곡하시고, 그 교인을 향해 분노하는 목사를 바라보시며 통곡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죄를 짓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마음은 분노가 아닌 슬픔이었습니다. 교회 안에서조차 서로 헐뜯고, 상처주고, 자기를 주장하며 살아가는 우리를 보시는 주님의 마음은 깊은 슬픔과 안타까움이었습니다. 자아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주님의 그런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죽지 않았다면 죽어도 몰랐을 주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요즘 우리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좋지 않습니다. 미움과 분노가 들끓고 있습니다. 여러분, 미움과 분노는 결코 주님의 역사가 아닙니다. 주님이 역사는 사랑과 용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일간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지도자들이 분노와 미움으로 국민들의 감정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로 하나가 될 수 있게 성령께서 역사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일본이 한국에 보복하기 위하여 한국에 수출 금지 조치를 내린 몇 가지 물품은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반도체 제작이 없어서는 안 되는 핵심 소재라고 합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그런 물품을 생산하기는 하지만 문제는 순도라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도 한국에서 생산하는 것은 순도에서 일본 제품을 따라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반도체를 만드는 데는 순도 99%로도 안되고 순도 99.999%의 제품이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순도 99% 제품으로는 지금 한국이 생산하는 세계 최고의 반도체 제품을 만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얼마나 죽었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 있는 정도가 다릅니다. 90% 죽은 사람과 99.999% 죽은 사람은 쓰임 받는 정도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데는 순도 99.999%의 원료를 써야 되듯이, 최고의 인물로 쓰임 받기 위해서는 순도 99.999%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능력이 부족해서 못하시는 경우는 없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입니다.

우리 힘과 노력으로는 죽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죽을 수가 있습니다. 옛 사람의 죽음은 나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로 죽음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 충만을 받아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임으로 하나님께 쓰임을 받아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과 영광을 맛보며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고 성공하기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고 영원한 천국에서 성공하기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시들어 버릴 꽃다발을 받기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 생명의 면류관을 쓰기 위해 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의 인정을 먹고 사는 연예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을 먹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 모두가 썩어질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칭찬받고 면류관을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써 승리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하는 표현은 영어로 ing형, 스페인어로는 ando, iendo형, 현재 진행형입니다. 받고, 또 받고, 또 받고, 또 받으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라도 휘발유가 없으면 달릴 수가 없습니다. 휘발유를 한번 넣고 평생 달리는 자동차도 없습니다. 휘발유를 넣고 떨어지면 또 넣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령 충만도 받고, 또 받고, 또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문제가 뭔지 아세요? 19장 2절 보니까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로 이것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의 문제고,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죄와 유혹도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제인 것입니다.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성령님을 알아야 합니다. 힘써 알아야 합니다. 성령님을 알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에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을 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요1: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눅4: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눅4:14-15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예수님은 성령을 힘입어 사역을 하셨습니다.
마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서 사명을 감당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라는 당부였던 것입니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여러분, 자기 힘으로 예수를 믿는 것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하면 교회에서 하는 봉사가 다 짐이 됩니다. 주일 예배조차도 짐이 됩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을 받으면 예배 시간이 기다려지고, 봉사가 기쁘고 즐겁습니다.

스토미 오마샨 목사님은 어릴 때 어머니가 정신 질환이었고, 아버지는 아이들을 돌보지 않아서 완전히 버려진 자식처럼 자랐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상처, 슬픔, 두려움, 우울증으로 20대에 술과 마약으로 방황을 했습니다. 그런데 29살 때 친구가 그를 예수님께로 인도해서 예수님을 믿고 성령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가까운 친구를 주님께로 인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 받게 하시기 바랍니다. 삶이 변화됩니다. 새로워집니다. 새로운 삶을 살게 되고 능력 있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성령 충만 받고 나서 큰 은혜를 체험하여 오늘날 목사가 되어서 절망에 처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주의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요,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저에게 성령님과의 특별한 만남은 오로지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배하는 데에 집중하게 만들었습니다. 성령님과 만난 후 성전에 들어갈 때마다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가 좀 더 예수님을 닮아 가도록 도우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있게 하기 위해 우리 안에서 일하십니다. 성령 충만하면 우리의 인격이 변화되고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성령의 열매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사람 안에서만 나타납니다. 우리는 성령을 우리 삶의 액세서리쯤으로 생각해선 안 됩니다. ‘성령’이 곧 우리의 ‘삶’입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승리의 삶을 살아가려면 반드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죄인인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없습니다. 성령 충만할 때 우리는 세상을 이길 힘을 공급받아서 세상의 죄악과 유혹을 물리칠 수 있게 됩니다. 성령 충만하면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은 뒤에도 성령을 받지 않으면 자신의 욕심이나 감정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자기의 욕심과 감정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 날마다 승리하며 살아가는 신앙생활의 비결은 바로 성령 충만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를 믿고 나서 반드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 충만 받기 전에는 무기력했습니다. 3년 반 동안이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웠지만, 예수님이 붙잡히실 때에 제자들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성령을 받게 되자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두려워 떨며 숨지 않았습니다. 문을 박차고 뛰어나가 담대히 말씀을 전할 때, 하루에 삼천 명, 오천 명, 얼마 안 돼서 수만 명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초대교회가 탄생했고,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성령이 있음도 알지 못했던 에베소 성도들이 사도 바울의 권면을 받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자 불과 이년 만에 온 아시아를 복음으로 변화시켰습니다.

행19: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무력했던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성령 충만을 받자 불과 2년 만에 온 아시아에 영향을 끼쳐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우리 또한 성령 충만을 받으면 에베소 교회처럼 쓰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 또한 온 유럽과 아프리카에 영향을 끼치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날마다 모여서 간절히 기도하여 성령 충만을 받고 흩어지면 전도하여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