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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하시나니 롬8:3-4 (2019.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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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날짜19-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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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하시나니 롬8:3-4
2019. 6. 23 주일 낮

롬7장에 보면 한 사람의 절규가 나옵니다.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절규는 함부로 산 사람의 절규가 아닙니다. 예수를 믿어도 시시하게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몸부림을 쳐본 사람의 절규입니다.

롬7:22-23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어느 한 목사님의 절규를 소개합니다.
예수님을 진정한 구주로 영접한 후 나는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내 삶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조금도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은 내 모습을 보고 나는 큰 당혹감에 빠졌습니다. 하루는 새벽 예배 설교 후 나의 죄와 가증함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강단 뒤에서 데굴데굴 구르고 부르짖으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발 죄를 안 짓고 살게 해 주세요”
그런데 며칠 뒤 한 교인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이 기도하는 것만 봐도 은혜가 됩니다.”
강단 뒤편에서 몸부림치며 데굴데굴 구르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 목사님이 성도들을 위해 저리도 간절히 기도하는구나.’라는 생각에 그렇게 은혜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교인들 모르게 마음으로 짓는 죄가 너무 커서 그랬노라 말도 못하고 나는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몸부림치며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목사도 결코 죄에서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과 예수 믿고 회심했더라도 사람은 여전히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 받았다는 것이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회심한 이후에도 심지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을 쳐도, 아니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절망하게 됩니다.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여러분, 사람은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힘쓰고 애쓰고 노력해도 죄를 짓지 않고 살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말입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죄를 떠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하나님께서 죄를 용납하신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죄를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수 없으며, 부흥이 임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죄가 있으면 기도의 문이 막히고, 감사와 기쁨이 사라지고, 연단이 계속됩니다.

많은 분들이 하나님을 까다로운 분, 인색하고 무서운 분으로 느끼곤 합니다. 좋으신 하나님이 이토록 어려운 분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죄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자유함이 사라지고 죄를 엄히 징계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다보니 우리에게 무섭고 엄격하신 하나님의 이미지만 남았습니다. 죄 때문에 좋으신 하나님을 누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성품까지 곡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가 있습니다.

롬8:3-4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율법은 선한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7장 12절에 보면 율법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7장 10절에서는 율법을 ‘생명에 이르게 하는 계명’이라고 말합니다.

이와같이 율법 자체는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이며, 생명에 이르는 계명이지만, 문제는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생명에 이르는 계명을 우리에게 주셨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그림의 떡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 앞에서 좌절하는 것입니다. 율법 앞에서 더욱 목이 마른 것입니다. 알면서도 가질 수 없고, 보면서도 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이 여기에 있는데 잡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킨 자는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겠다고 하는 사람은 마치 헤엄쳐서 대서양을 건너가겠다고 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헤엄을 잘 치면 라스 깐떼라스 해변에서 방파제까지는 갈 수 있습니다. 헤엄을 더 잘 치는 사람은 떼네리페까지도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노력과 의지와 행위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율법 앞에 절망하는 인간에게 또 하나의 선물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이 선물은 무엇입니까?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첫 번째 선물인 율법은 꼭 필요하긴 하지만 우리를 좌절시키고 절망케 하는 선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선물은 우리를 살게 하고 소망을 갖게 하고 구원을 얻게 하는 그런 선물인 것입니다.

3절에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분은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셨지만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율법을 완전히 다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켜 ‘율법의 마침’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율법의 ‘완성’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인간도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인간과 똑같은 육신의 몸을 입혀서 세상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율법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율법을 다 지키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내가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룬 것처럼 여겨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은 행위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무엇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행위를 통해서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율법을 다 이루신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DMZ에서 한 북한 병사가 귀순을 해 왔다고 합시다. 북한 땅에 있는 동안에 그는 북한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북한에 있는 동안에는 그 세력으로부터 도망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필사의 노력을 해서 DMZ를 넘었다고 합시다. 바로 그 순간, 북한의 모든 힘이 이 사람에게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롬8: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육신이 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이 하시는 방법은 성령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죄를 짓지 않고 살기를 원하십니까? 진정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성령 충만을 받으면 됩니다. 인간의 수양과 도덕, 노력으로 불가능한 그것을 하나님이 하시나니 곧 성령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을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라면 특별히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 성도라면 반드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왜 받아야 합니까? 예수님과 사도들이 성령 충만을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성령 충만이 성도의 영적 능력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예수를 믿어서 생명은 있는데 능력이 없는 성도가 있습니다.

병원 중환자실에 가면 산소 호흡기를 끼고 링거액을 맞으며 누워 있는 중환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들도 분명히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숨을 쉬는 것조차 자기 힘으로 할 수 없어서 산소 호흡기를 의지하고 스스로 음식을 섭취할 수 없어서 수액을 맞으며 겨우 연명합니다.

우리도 꼭 이와 같은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의 생명을 가졌다는 성도가, 매일 매일 죄와 유혹에 빠져서 실패하는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과 함께 권능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 충만은 내 힘과 노력이 아닌 성령님의 능력으로 죄와 유혹을 이기고 온전히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은 성도라면, 정말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 성도라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성령 충만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하나님 앞에 담대히 구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행8:14-16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존 웨슬리가 성령을 체험하고 영국 교회에 성령 운동을 일으키자 그의 모교인 옥스퍼드 대학에서 교수들이 그를 불렀습니다. 그가 벌이고 있는 성령 운동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존 웨슬리는 교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성령 충만을 받으시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지성인인 자기들 앞에서 이런 설교 제목은 곤란하다고 난감해 하는 최고 석학들 앞에서 웨슬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고, 예수님과 함께 먹었고, 자신들의 눈으로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도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에 머물러 성령 세례 받기를 기도했고,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난 다음에 전도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와 사도들의 설교를 듣고 일시에 3천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다음에는 5천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님, 여러분은 예수님을 직접 만난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식사했습니까? 예수님의 기적을 직접 보기라도 했나요?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함께 먹고 기적을 목격했던 제자들도 성령이 임하여 권능을 받은 다음에야 나가서 영혼을 건질 수 있었는데, 그렇다면 여러분이야말로 반드시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웨슬리의 설교를 들은 교수님들이 깨어졌습니다. 그 후 옥스퍼드 대학에 성령 운동과 영적 갱신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산업 혁명의 위기를 겪던 영국 사회가 변화되기 시작했고, 빈부 격차의 문제도 해결되었습니다. 교회가 부흥하면서 영국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성령 충만을 받을 수가 있습니까? 여기에는 특별한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님의 절대적인 주권 아래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통해 우리는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한 두 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성령 충만을 간절해 원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성령 충만의 약속을 진정을 믿고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눅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아무리 성령 충만을 구해도 받지 못했다고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래서 때로는 구하면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구했는데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시는 걸까요?

여러분은 진정으로 성령 충만을 사모하여 간절히 성령 충만을 구하고 계십니까? 정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으려면 언제 어디서나, 집에서나 교회에서나, 모였을 때나 흩어졌을 때나, 홀로 있을 때나, 밤낮으로 줄곧 ‘하나님, 성령 충만을 주세요’라고 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물질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밤낮 돈을 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돈의 위력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결국 지금 우리가 정말 성령 충만을 간절히 원하는지, 정말 간절히 성령 충만을 구하는 것인지 스스로 물어 보아야 합니다. 밤이고 낮이고, 성령 충만을 달라는 기도가 나오는지 한 번 스스로 물어 보십시오. 우리가 진심으로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런데 돈을 달라는 기도, 병을 고쳐달라는 기도는 날마다 하면서 성령 충만을 달라는 기도는 어쩌다 한 번 한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성령 충만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여 전심으로 기도에 힘썼습니다. 예수님은 그 날이 언제라고 확정하지 않으셨고 다만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느 사람 같으면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록 아무 변화가 없으면 낙심하여 떠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은 끝까지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끝까지 믿고 끝까지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열흘 째 되는 날, 오순절이 되었습니다. 갑자기 기도하던 120문도 위에 성령이 바람같이, 불같이 운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이 드디어 임한 것입니다. 끝까지 구하는 것, 이것이 성령 충만을 받는 첫 번째 비결입니다.

2. 완전한 순종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은 완전한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완전히 순종하는 자에게 성령을 부어 주십니다.

행5: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많은 성도들이 성령님께 완전히 순종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싫어하는 일을 하라고 하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성령 충만을 구합니다. 이것은 거짓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이란 성령님께 완전히 사로잡혀 성령님께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무슨 말씀들 들어도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하리라’고 결심하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령 충만이 성령님께 완전히 복종하는 것이라고 해도 성령 충만을 구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이 명하시는 것이라면 무조건 순종할 결심이 섰습니까? 모든 죄를 다 끊고 살겠습니까? 모든 음란한 영화, 잡지, 책들을 멀리 하시겠습니까? 욕설도, 거짓말도, 싸움도, 비난과 비방도 다 끊겠습니까? 이런 결심을 하려고 할 때, 혹시 마음이 슬프고 무슨 재미로 사나 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죄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죄와의 싸움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를 즐기는 사람, 불순종하는 사람을 사용해 보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순종하는 사람을 붙들어 사용하시고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 먼저 성령님께 완전히 순종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한다는 것은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지 않으면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고 싶은 마음과 소원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그 힘을 주실 수가 없습니다.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닌 성령님의 능력으로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신의 힘으로는 용서할 수도 없고, 사랑할 수도 없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때 ‘나는 용서할 수 없어요. 사랑할 수 없어요.’라고 하는 것과 ‘하나님, 용서하고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힘을 주세요.’ 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성령님께 완전히 순종할 각오와 결단이 되어 있습니까? 성령님이 어떤 길로 인도하시든지 순종하시겠습니까? 가라고 하면 가고, 서라고 하면 서시겠습니까? 무엇을 바치라고 하든지 순종하겠습니까? 심지어 생명을 바치라고 해도 순종하시겠습니까? 정말 성령님께서 하라는 대로 온전히 순종하겠습니까?

성령 충만을 받고 나서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머리를 굴리고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요모조모 따지며 살아왔는데 결국은 그게 아무 것도 아니었구나 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었지만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아서 내 인생이 이만큼 밖에 되지 않았구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데 내가 하나님의 아버지의 선하심을 믿고 온전히 순종하지 않아서 내 인생이 이렇게 힘들었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을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이제부터는 제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온전히 믿겠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저보다 더 잘 아시고, 저를 저보다 더 사랑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겠습니다. 성령님, 제게 말씀해 주세요. 온전히 순종하겠습니다. 죽든지 살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순종하겠습니다.’

이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삶을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성령님이 지금 여러분에게 요구하고 계신 것이 있다면 무조건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고 깨달았다면 순종하기를 주저하지 마십시오. 순종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더 이상 고민하지 말고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날마다 승리하는 비결이고 기적으로 충만한 삶을 사는 비결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십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성령 충만 입니다. 우리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지만 성령 충만을 받으면 성령님이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며 기도하여 성령 충만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기로 결단하며 성령 충만을 구하여 성령 충만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령님이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