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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1:3-5 (2019.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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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날짜19-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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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1:3-5
2019. 6. 16 주일 낮

행1: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여러분,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오병이어로 굶주린 군중들을 배불리 먹이시고, 성난 바람과 파도를 말씀으로 잠재우시며,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던 분이십니다. 그 예수님이 가장 흉악한 죄인을 처형하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마16:13-17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6:21 이 때로부터 (자신이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계시한 이후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예수님 자신의 죄 때문에 당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죄와 저주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죄의 문제입니다. 죄로 인하여 땅이 저주를 받고, 죄로 인하여 죽음이 오고 마귀의 종이 된 것입니다. 인간에게 저주와 죽음이 찾아오는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따라서 죄가 없으신 하나님께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죄 없으신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죽음은 자신의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의 죄 때문인 것입니다.

사53:4-6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여 40일 동안 나타나셨습니다.
다시 3절을 보십시오.
행1: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사흘 만에 죄와 죽음을 정복하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부활 사건에는 확실한 많은 증거가 있다는 것입니다.

확실한 많은 증거가 무엇입니까? 빈 무덤, 부활의 목격자 (500명이 넘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기록할 당시만 해도 그들 대부분이 살아 있었습니다), 변화된 제자 (죽음이 두려워 벌벌떨던 제자들이 다 순교), 성령 세례 (예수 부활의 결정적 증거)

요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7: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이것은 무슨 얘기입니까? 그들이 목격한 예수님의 부활은 가상의 사건이거나 상상의 산물이거나 꾸며낸 얘기가 아니라 실제의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아무리 십자가를 믿는다고 해도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십자가만을 본 사람은 율법적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부활을 본 사람은 은혜적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만이 기적을 이해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만이 선교가 무엇인지를 압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만이 떠난다는 의미를 압니다. 그 전에는 그런 말을 들으면 섭섭하고 갈등이 많이 생겨서 괴롭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그 얘기가 무슨 얘긴지 전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건을 고전15:3-8에서 이렇게 묘사합니다.
고전15:3-8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했던 사울이 어떻게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영안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행9:17-20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사울은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요, 그 당시 최고의 율법선생인 가말리엘의 문하생입니다. 성경 박사입니다. 그렇지만 그 지식이 그를 구원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하는 데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그의 영안이 열리자 성경이 밝히 깨달아져서 즉시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도 바로 승천하지 않으시고 40일 동안 지상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이 40일 사건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예수님 40일 금식 하셨습니다, 모세도 40일 금식했습니다, 12정탐꾼이 실패하니까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죽었습니다. 엘리야가 40주 40야를 걸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까지 갑니다.

이스라엘에서 40은 시련의 수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후 40일은 엄청난 위기의 기간입니다, 모든 제자들이 낙심하여 다 세상으로 돌아가고, 도마는 부활은 무슨 부활하며 안 믿고, 모든 제자들은 지리멸렬한 가장 어려운 시련의 기간입니다. 그러나 그 40일 동안 자꾸 나타나셔서 제자들에게 부활을 확증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또한 시련의 40일을 잘 이겨내면 승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40일 동안 지리멸렬했던 제자들의 흔들리는 마음을 재정비해서 다시 뭉쳐 놓으셨습니다. 그런 다음에 제자들에게 분부하여 성령을 받게 하여 하늘의 권능을 받게 하여 그 권능으로 승리하며 증인된 삶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

행1:4-5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여러분, 기독교는 약속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축복은 약속의 형태로 주어집니다. 이 약속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히6:13-15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신 약속 중에 최고의 복이 무엇입니까?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눅11:11-13 너희 중에 아버지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요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여러분, 사도행전이 어떻게 시작됩니까? 오순절로부터 시작됩니다. 오순절 사건은 성령의 점화 사건과도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부활 후에 40일 동안의 삶 중에서 특별히 예수님이 부활 후에 이 땅에 계신 40일 동안의 삶은 천국과 현실 세계의 삶을 뒤섞어 놓은 삶입니다. 이 세상에는 그런 삶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마치 투명인간과도 같이 제자들 앞에 불쑥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제자들과 함께 음식도 드시지만 또 어느새 사라지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인간들이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독특한 삶을 인간들과 나누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40일 동안 그런 삶을 사신 것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너희는 이 모든 일이 증인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일이요, 우리가 말하는 구원의 내용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 구원의 내용이 어떻게 폭발하고 역사합니까? 그것은 마치 달을 탐험하기 위해 NASA의 과학자들이 온갖 지혜를 다 동원해서 만든 우주선과 같습니다. 그 우주선 안에는 모든 장치가 다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발사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주선을 발사하여 대기권 밖으로 내보내서 여러 차례의 궤도 수정을 거쳐 달에까지 무사히 착륙시켜야 그 과학자들이 구상하고 디자인한 모든 것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오순절의 성령 사건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완벽한 구원의 삶을 다 사시고, 십자가에서 못 박혀 친히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내가 다 이루었다 하셨습니다. 구원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달을 탐사하기 위해 제작된 우주선과 같은 것입니다. 이 우주선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엔진을 점화시켜 폭발이 일어나 움직어야 하는 것입니다.

엔진에 점화를 일으킨 그것이 바로 오순절의 성령 사건입니다. 오순절 성령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이 완성하신 구원이 우리의 삶에 역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예수님이 완성하신 구원의 모든 것들이 실제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만약 로켓의 엔진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나지 않아 장치들을 움직이게 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로켓이 발진하지 않는다면 우주선은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십자가지 그것이 나와 상관이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예수님의 부활도 나와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완성하신 구원사역이 내게 구체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눈물을 흘리고 회개하며 새 사람이 되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3년 동안 배웠던 제자들이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실 때 다 도망을 갔던 이유는 지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 집의 계집종 앞에서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가 대제사장 앞에서도 담대하게 외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은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이것을 잘 아시는 예수님은 자신을 버리고 도망을 갔던 제자들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으라고 당부하셨던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으면 다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 세례는 어떻게 받습니까? 지식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1. 성령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을 떠나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아무 데서나 줄 수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장소가 중요합니다. 무슨 일을 해도 천시, 하늘의 때를 알아야하고, 하나님이 정하신 장소를 알아야 합니다.

창22:2 야훼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삼하24:18 이 날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고하되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소서 하매

창35: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왕상12:29-30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왕하12:2-3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다만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더라

예루살렘에 성령이 임하시는 시가 천시입니다, 다른 때에는 성령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장소는 예루살렘 밖이 아니라, 예루살렘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이 지시하신 예루살렘에서 한 마음으로 10일간 기도하여 하나로 단결되었을 때 성령을 받았습니다.

다시 5절을 보겠습니다.
행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성령 세례를 받으셨습니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 분은 예수님의 명령처럼 이 교회를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봉사와 같은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봉사보다는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제가 정말 성령 세례를 받아 새로워지기를 원합니다.’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한 번 구원 받은 사람이 자꾸 구원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과는 다릅니다. 구원은 한 번 받는 것입니다. 성령 세례도 개인에게 한 번 임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령 충만은 계속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성령 충만의 체험을 성령 세례라고 하는데, 한번 성령 세례를 받았다고 계속 성령 충만하느냐? 아닙니다. 성령은 마치 기름과 같아서 기름이 휘발되는 것처럼, 어제 저녁에 성령 충만을 받았어도, 밤에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성령 충만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재충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게 되고요, 예전에는 환경과 현실을 보고 절망하던 내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담대하게 됩니다.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을 보며 원망 불평을 하던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손해볼까봐 겁내던 일을 이제는 겁을 내지 않고 하게 됩니다. 이상합니다. 그렇게 마음이 너그러워질 수가 없습니다. 이전에는 개울 같았던 우리의 마음이 바다같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성령 세례를 받으면 놀라운 하나님의 새 나라가 내게 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풀어 주셨던 모든 구원의 능력이 내게 임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가 임하고 성령의 열매가 맺혀서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는 기적이 임하는 것입니다. 전에도 전도해야 함을 알지만 전도하지 못했는데 성령 세례를 받으면 능력이 임하여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에도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함을 알았지만 그렇게 살지 못했는데 성령 세례를 받으면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게 되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지혜가 생기고,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의 마음이 생깁니다.

여러분, 이런 능력을 받기를 원하시지 않습니까? 예수를 믿었지만 이전처럼 그렇게 시시하게 살겠습니까? 감동없는 그런 삶을 지속하시겠습니까? 죄와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번번히 넘어지면서 살아가겠습니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하며 탄식하면서 살겠습니까?

짐 그래함 목사님이 성령을 받기 전에 그런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자기는 공부도 아주 많이 하고 영국에서 제일 좋다는 학교도 나오고, 그 후에 목사까지 되었는데, 성령을 받았다는 어떤 사람을 만나니 뭔가 다르더랍니다. 그 사람이 굉장히 기뻐하고 좋아하는데 자기도 기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다르게 느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굉장히 열등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저 사람 속에 뭔가 다른 점이 있다. 그렇다고 저 사람이 나보다 훌륭한 것도 아닌데 뭔가 다른 점이 있다’

예수를 믿어도 왜 이렇게도 다릅니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 받은 교회와 받지 않은 교회는 다릅니다. 안디옥 교회가 성령 받지 못하였을 때에는 자기 신앙조차도 관리하지 못하였으나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받고 성령을 받은 이후에는 온 아시아를 변화시키는 귀한 교회로 쓰임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약속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정말 변화 받기를 원하십니까? 날마다 승리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예수를 그렇게 시시하게 믿고 마시겠습니까? 나 하나, 내 생각하나 고칠 수 없는 예수님이라면 그분이 어찌 예수님이겠습니까?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은 지금도 살아 계시고 기적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약한 나를 강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리석은 나를 지혜롭게 변화시키는 분이십니다.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자들을 택하여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믿는 우리가 시시하게 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 세례를 받아, 죄와 유혹을 이기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역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모두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 세상을 이기고 날마다 승리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역으로 쓰임받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