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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디 있느냐? 창3:6-9 (2019.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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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날짜19-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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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디 있느냐? 창3:6-9
2019. 5. 12 주일 낮

창세기 3장을 보면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후에 나타난 현상을 몇 가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현상은 ‘부끄러움’입니다.

창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뱀은 앞서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하였습니다. 아담이 뱀의 말에 속아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그들에게 찾아온 것은 하나님과 같이 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발가벗은 수치를 느끼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그들이 선악과를 먹은 후부터 발가벗고 살기 시작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전에도 벗고 살았습니다. 벗고 살았지만 부끄러움을 전혀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고 난 후에 그들의 눈이 밝아지니까 자기들이 벗은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죄를 짓고 나면 수치와 부끄러움이 생깁니다. 죄를 짓기 전에 인간에게는 수치와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죄는 수치감을 심어줍니다. 그래서 급히 무화과나무 잎으로 그들의 수치를 감추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지은 죄는 인간의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무화과나무 잎으로 가린다고 해서 부끄러움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지은 죄는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짐승을 죽여 피를 흘리고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혀주셨습니다. 죄의 문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해결됩니다. 예수님은 죄로 인한 수치와 부끄러움을 가려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속옷까지 벌거벗겨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우리의 죄를 다 씻어 주셨던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후에 나타난 두 번째 현상은 무엇입니까?
창3: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야훼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야훼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죄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게 하고 숨게 만듭니다. 아담이 죄를 짓기 전에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그렇게 기쁘고 즐겁고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뱀의 유혹을 받아 죄를 지은 후부터 하나님과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찾아오셨지만 전혀 기쁘지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두려워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숨어있을 때 야훼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네가 어디 있느냐 하셨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이 질문은 아담이 야훼의 낮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것을 알지 못해서 묻는 질문일까요? 물론 당연히 아닙니다.

선지자 사무엘 시대에 백성들이 왕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삼상10:1 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 맞추며 이르되 야훼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지 아니하셨느냐

이후에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미스바로 불러 야훼 앞에 모으고 제비뽑기를 했는데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베냐민 지파를 가족별로 가까이 나오게 하였더니 사울이 뽑혔으나 그를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삼상10:22 그들이 또 야훼께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야훼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짐 보따리들 사이에 숨었느니라 하셨더라 (온 백성이 찾아도 찾지 못한 사울을 하나님은 어디에 숨었는지 밝히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사람의 착각 중에서 가장 큰 착각은 하나님의 눈을 피하여 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눈을 피하여 숨을 수가 없습니다. 다윗은 일생동안 하나님을 섬기면서 얻은 체험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시139:1-10 야훼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야훼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한때 다윗은 하나님을 속일 수 있고 하나님의 눈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밧세바가 임신을 하니까 그 죄를 은폐하려고 전쟁터에 나간 그녀의 남편 우리아 장군을 불러서 동침하게 하려고 했으나 우리아가 아내와 동침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술 취하게 하면 동침할까 하여 술을 잔뜩 먹여서 취하게 해 보았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그 죄를 은폐하려고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완전히 은폐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엄히 꾸짖으셨습니다.

삼하12:10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결국 다윗은 ‘하나님은 나의 앉고 서는 것을 아시고 나의 생각과 눕는 것까지도 알고 계신다’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숨길 수 없습니다.

막2:8-12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2:5-7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사람들이 죄를 짓는 이유는 그 순간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보실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창39:11-12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그 여인이 (보디발의 아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니까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은 보고 계신다는 코람데오 의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에 요셉이 억울하게도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힙니다. 그런데 감옥에 갇힌 요셉이 어느 누구에게도 억울하다는 말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견딥니다. 그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의 무죄를 알고 계시고 나의 억울함을 알고 계신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요셉과 함께 하셨고, 그를 높여 귀하게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야훼의 낮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 있는 아담을 찾아오셔서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고 묻지 않으시고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이 질문은 아담이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 있는 것을 몰라서 하시는 질문이 아닙니다. 아담이 처한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하신 질문입니다. 아담은 자신의 범죄한 순간 영이 죽고, 저주 아래 있고,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에서 마귀의 종으로 신분으로 바뀐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엉뚱한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정답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다 이루었다” (요19:30)입니다. 그 이후에 예수님이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그 대답이 진리였음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하나님의 질문에 이렇게 힘차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예, 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 씻음을 받고 의 가운데 있습니다.”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는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받아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고 회개함으로 죄 사함을 받고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더 이상 마귀의 참소를 받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게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는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질문에 “저는 하나님과 화목한 가운데 있습니다. 옛날에는 하나님과 원수된 가운데 있었으나 화목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고 힘차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골1:21-23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갈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더 이상 원수가 아니라)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여러분, 아무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서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질문 앞에서 “저는 치료 가운데 있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혼이 치료받고 의와 평강이 넘쳐 납니다. 육체도 하나님의 치료를 누리고 있습니다.”라고 힘차게 선언할 수 있습니다.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마8:16-17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여러분, 믿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처럼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것입니다.

롬4:18-21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히11: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지 않습니다. 가나안 땅을 40일간 정탐한 자들의 말이 다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다른 곳을 보고 왔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믿음이 있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느냐,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이지 못했느냐에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정탐꾼들을 성이 높고 견고한 것과 대적의 강함만 보고 절망했지만, 믿음이 있는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야훼께서 기뻐하시면 그 땅을 주시리라고 했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약속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을 정복했던 것입니다.

85세가 된 갈렙이 헤브론을 정복한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수14:9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이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헤브론을 정복하고 차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네가 어디에 있느냐”란 질문 앞에서 “저는 아브라함의 복 가운데 있습니다. 저는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났습니다.”라고 담대하게 외칠 수 있습니다.

갈3:13-1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나아가서 우리는 “네가 어디에 있느냐?”라는 질문 앞에서 “저는 영생 가운데 있습니다. 저는 죽음의 권세를 이겼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으로 저도 부활합니다. 저는 영원한 천국에 들어갑니다.”라고 담대하게 선언할 수 있습니다.

요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더 이상 멸망의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천국의 영광의 자리에 있습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아니하면 예수님이 재림하십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때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남은 우리도 변화를 받아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우리의 약한 몸이 강한 몸으로, 추한 몸이 영화로운 몸으로,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화를 받아 주와 함께 영원히 살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는 영벌의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천국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고전15:20-22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전15:51-58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라

이것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부활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용서와 의 안에 있으며 영생과 천국 안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네가 어디에 있느냐”라는 이 준엄한 질문 앞에서 가슴을 펴고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죄악을 벗어나 의 가운데 있습니다. 전에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혼이 치료받고 의와 형강과 희락이 넘쳐나며 육체 또한 치료를 누리고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율법의 저주에서 벋어나 아브라함의 복 가운데 있습니다. 나아가서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므로 저도 부활합니다. 라고 담대하게 외칠 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있는 자리, 자신의 현주소를 모르고 있습니다.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고,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리는 복을 모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목적을 모르고 살거나, 잘못된 목적을 가지고 살고 있기 때문에 허무하고 외롭고 고독합니다. 돈을 많이 벌고 원하는 목적을 성취했다 할지라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아십니까? 그리고 죽으면 어디로 갑니까?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 납니까? 여기에 대한 해답이 없는 사람은 죽음에 대한 불안이 있습니다. 암에 걸리면, 사업이 망하면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업이 망했다고 인생이 망한 것도, 죽을병에 걸렸다고 인생이 패배한 것도 아닙니다. 원하는 목표에 이르지 못했다고 여러분의 인생이 끝이 난 것이 아닙니다.

워런 버핏이라는 세계 최고의 부자 중의 한 사람이 한 강연회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지금 위치에서 과거에 배운 교훈들을 돌아볼 때 성공을 어떻게 정의하겠습니까?” 그때 그는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공이란 원하는 것을 많이 얻는 것, 행복이란 것을 많이 얻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82세인 내 나이가 되면 말입니다. 당신이 사랑해 줬으면 하는 사람이 당신을 사랑해 주면, 그게 성공입니다. 당신은 세상의 모든 부를 다 얻을 수도 있고, 당신 이름을 딴 빌딩들을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당신을 생각해주지 않으면 그건 성공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자녀들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주위의 사람들이 당신을 사랑한다면, 나이가 든 후에도 당신은 성공한 것입니다.”

그날 강연회를 진행한 사람이 그런 성공관의 배경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버핏은 자기가 사는 도시에 사는 벨라 아이젠버그란 여성을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여성은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세상을 떠나기 몇 년 전 버핏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고 합니다.

“나는 친구를 사귀는 게 매우 더뎌요, 왜냐하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질문하거든요. 저 사람들은 나를 숨겨줄까 하고 말이예요. 당신이 70세나 75세가 됐을 때 주위에 당신을 숨겨줄 만한 사람들이 많다면 성공한 거예요.”

여러분, 우리에게는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 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받아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세마포 옷을 입혀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가려주시고 풍성한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가난하고 병이 들어도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나를 버려도 나를 사랑하여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인생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할지라도 우리는 성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범죄한 아담에게 하신 질문은 ‘네가 어디 있느냐?’였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부를 때 죄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의미로 부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를 때는 믿음의 조상을 만들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불붙는 떨기나무에서 모세를 부르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구원해야 할 사명을 주기 위하여 부르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어린 사무엘과 엘리야, 엘리사를 부르셨고,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에스겔을 부르셨습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베드로, 요한과 안드레, 나다나엘을 부르셨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가던 사울을 다메섹도상에서 부르셨습니다.

사무엘과 바울을 부르시던 그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도 부르고 계십니다. 저는 여러분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죄를 지은 아담을 부르던 그 부르심이 아니라 복과 사명을 주기 위한 것이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