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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왕하7:1-9 (2019.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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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날짜19-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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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왕하7:1-9
2019. 3. 10 주일 낮

왕하7:1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하셨느니라

어떤 상황에서 한 말씀입니까?
왕하6:24 이 후에 아람 왕 벤하닷이 그의 온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니 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비둘기 똥 사분의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귀를 부정한 짐승으로 여기기 때문에 평소에는 나귀를 먹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 중에 양식이 다 떨어져서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 되자 나귀머리 하나가 무려 은 80세겔이나 되었습니다. 그것은 약과입니다.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여인들이 자식을 삶아서 먹는 일도 생겼습니다.

왕상6:28-29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오늘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그 여인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그가 그의 아들을 숨겼나이다 하는지라

바로 이 때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7.3리터)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게 된다고 예언한 것입니다. 내일 이맘때가 되면 오늘 나귀 머리 하나를 사는 값으로 고운 가루 584리터를 살 수 있게 되고, 보리는 1,168리터를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굶주림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엘리사가 외친 이 메시지보다 더 위대한 복음, 더 절박한 복음, 더 아름다운 소식, 더 기쁜 소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본문 2절을 보면 이 복음에 대한 한 사람의 반응이 나옵니다. 그는 왕의 총애를 받고 있던 장관입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기를 "야훼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합니다.

이 사람은 나라의 경제형편, 국고나 식량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국가의 경제현실을 잘 분석하고 있어 왕이 총애하는 장관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기 때문에 그들의 조상들이 출애굽 했을 때 광야 40넌 동안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먹이신 일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관은 야훼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 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동안 책임지신 하나님께서 지금 자신들의 굶주림은 해결할 수 없다고 불신한 것입니다.

본문의 장관의 모습에서 똑똑하고 계산이 빠르고 영악하긴 하지만, 믿음이 없어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틈이 없고, 약속된 말씀을 도무지 믿지 않는 현대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람에게 엘리사가 말합니다.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불신앙의 댓가를 거두겠다는 말입니다. 사건을 조금 뛰어넘어 이 장관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왕상7:16-17 백성들이 나가서 아람 사람의 진영을 노략한지라 이에 고운 밀가루 한 스아에 한 세켈이 되고 보리 두 스아가 한 세겔이 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고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였던 그의 장관을 세워 성문을 지키게 하였더니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으매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죽었으니 곧 왕이 내려왔을 때에 그가 말한 대로라

여러분, 이처럼 구원의 도리를 비웃는 자는 사람들의 발바닥에 밟힌 이스라엘 장관과 같이 처절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비웃지 마십시요. 복음의 능력을 경홀히 여기지 마십시요. 그런 점에서 내가 복음을 들으면 구원이요 경홀히 여기는 것은 심판입니다.

이런 상황이 진행되는 가운데 사마리아 성문 밖에는 나병환자 네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역시 굶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중의 백성들과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왕상7:3-4 성문 어귀에 나병환자 네 사람이 있더니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만일 우리가 성읍으로 가자고 말한다면 성읍에는 굶주림이 있으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만일 우리가 여기서 머무르면 역시 우리가 죽을 것이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 두면 살 것이요 우리를 죽이면 죽을 것이라

가만히 앉아서 굶어죽기만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희망을 향하여 행진한 것입니다. 그들이 희망을 향하여 아람 진을 향해 출발한 시간은 해질 무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나병환자 네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고 아람 진을 향해 떠나는 순간에 하나님께서 아람 군대에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왕상7:5-7 아람 진으로 가려 하여 해 질 무렵에 일어나 아람 진영 끝에 이르러서 본즉 그 곳에 한 사람도 없으니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밝은 낮이면 눈으로 보고 확인을 했을텐데 해가 진지라 소리만 듣고)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그들을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해질 무렵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영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

얼마나 다급하게 도망을 갔는지 장막, 말, 나귀, 양식을 다 두고 도망갔습니다. 이렇게 도망가고 난 후 나병환자들이 이 군인들이 진치고 있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들어가 보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가서 배부르도록 먹고 마시고 은 금 좋은 옷을 가지고 가서 숨겼습니다. 다른 장막에 들어가 보니 그 곳도 비어있습니다. 가서 좋은 것은 가져가 숨겼습니다. 그들은 큰 부자가 되었고 잘 먹고 잘 살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사건이 여기서 멈추었다면 그것은 축복일 수도 없고 성경으로서의 가치를 지닐 수도 없는 것입니다.

만약 오늘 본문이 성안의 많은 사람들은 굶어 죽어갔으나, 이 나병환자들은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었다라고 전개되었다면 이 얼마나 허무한 결론이 되겠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을 이 허무한 결론으로 마침표를 찍으시겠습니까?

네 명의 나병환자들은 한참이나 먹고 마시고 감추다가 불현듯 하나의 생각이 그들의 폐부를 찔렀습니다. 우리만 이렇게 먹고 마시고 즐기는 동안 저 성 안에 있는 수많은 내 동족들은 지금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각성을 한 것입니다.

왕상7:9 나병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지금 저 성 안에서는 양식이 떨어져서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우리만 이렇게 배불리 먹고 마시고 잘 살고 있다.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이렇게 양식이 많이 있다는 소식만 전하면 그들도 살 수 있는데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사마리아 성안에는 아람 군대가 급히 도망하느라고 남겨둔 군량미가 쌓여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여 굶주림에 허덕이며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것은 큰 죄악입니다. 이 소식을 전하기만 하면 살 수 있는데 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큰 힘이 드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가서 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들이 믿던 안 믿던 알리기는 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몰라서 굶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면서도 굶고 있는 것은 나병환자들의 책임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에게 알려는 줘야 합니다. 이 아름다운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면 문둥병자들은 평생 화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겔3:17-19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 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람 군대로 큰 군대로 소리를 듣고 도망하게 한 것이 네 사람의 나병환자만을 위한 것이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왕하7:1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하셨느니라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이 저와 여러분만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까? 어떤 이단이 말하는 것처럼 자기 종교집단들 144,000명만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딤전2:4-6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막16:15-16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우리가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고 복을 받아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어 천당 가는 것이 우리 삶의 전부이어야 하겠습니까? 아름다운 소식이 듣고 구원을 받았는데 다른 사람이야 구원을 받든 말든 잠잠해도 좋단 말입니까?

이제 우리는 침묵의 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무관심과 이기주의와 안일주의의 죄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 시간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요. 나는 잠잠해도 좋은 사람인가? 이 시간 복음을 전하라고 내 곁에 보내준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5월 19일은 우리교회 창립 39주년입니다. 하나님이 이곳에 우리 교회를 세워주신 것은 이 땅의 백성을 구원하라고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마다 교회 창립 기념일을 가족 이웃 초청 잔치로 준비했던 것입니다. 금년에도 가족 이웃을 초청하는 천국 잔치로 준비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금년에도 초청장을 한국어, 스페인어, 영어, 중국어로 제작해 놓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 3분의 VIP를 품으십시오. 여러분이 기도하는 많은 태신자(VIP) 가운데 3명을 품고 기도하십시요.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제자로 삼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교회에서 준비해 드린 초청장을 드리십시오. 그리고 창립 기념일에 교회로 모시고 오시기 바랍니다.

지금 사마리아 성안에는 시급을 요하는 굶주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한 시간 아니 몇 분이 중요합니다. 아마 그 중에 몇은 오늘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것입니다.

사람을 구조하는 일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합니다. 미루는 것은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구조대에는 주야가 따로 없습니다. 24시간 대기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일분일초가 급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기 나병환자들이 내일 전하자 하고 하루 더 미루었다면 많은 사람이 죽었을 것입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일은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교통사고나 대형 사고들의 경우 응급조치를 취하고 바로 병원으로 후송하면 대부분은 살 수 있는 사람들이랍니다.

어느 전도지에 있는 내용입니다. "지옥에 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당신이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가만히 있으면 자동으로 지옥 간다는 말입니다.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하는 중요한 이유는 '복음 전도의 책임'입니다. 영적인 굶주림에 대한 해답은 무엇입니까?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을 하십니다.

요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의 떡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굶주린 영혼들에게 해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영혼의 갈증에 해답입니다.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마리아 여인처럼 인생의 목마름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까? 죄와 허물로 죽은 영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 나는 생명의 떡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의 떡이 누구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침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전도하지 않는 죄'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본문에 하나님께서 역사를 움직이시는 또 하나의 섭리는 많은 사람들 중 하필이면 나병환자들을 뽑아서 이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놀라운 소식을 한 나라의 장관이나 대변인의 입술을 통해 선포하지 않으시고, 소외되고 버림받고 가난한 사람들을 통해 전하셨다는 이 사실이 얼마나 흥미롭습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일하시길 좋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고통 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일에 늙고 어눌하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자입니다. 그러므로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했던 모세를 사용하셨습니다.

고전1:26-29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미련한 자들을 택하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십니다.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은 "너"가 아니라 바로 "나"입니다.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 잠잠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복음전도는 은사를 받은 사람, 특별한 사명을 받은 사람에게만 맡긴 일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우리 모두가 함께 감당해야 할 삶의 본질이요, 삶의 목적입니다.

이 본문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데 하나님이 나병환자를 사용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나병환자들의 도움으로 자기들이 구원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들이 사용된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가만히 앉아있지 않고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성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성 밖에 나와 볼 생각도 못하고 그저 굶고만 있었습니다. 나오면 죽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거기 성안에 있어도 굶어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문둥병자는 움직였습니다. 여기서 굶어 죽으나 가서 아람 군대의 손에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지다 가서 한번 부딪쳐보기라도 하자하고 움직였습니다. 도전했습니다. 죽을 각오를 하고 가봤더니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람군대가 다 도망가고 양식만 쌓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을 쓰십니까? 가만히 앉아서 "전도할 대상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하는 사람을 쓰십니까? 아닙니다. 가서 전해보겠다 하면서 움직이는 사람을 쓰십니다. 가만히 앉아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기도했으면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찾고 두드리는 중에 우리는 예상치 못한 수확을 거두게 됩니다.

전도하다가 당하는 수치라고 해야 기껏해야 몇 번 욕먹는 것밖에 더 있겠습니까? 이번 한 주간 가만히 앉아있지 마십시오. 가서 예수님에 대해 얘기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도하는데 무슨 탁월한 사람을 쓰시는 게 아닙니다. 나병환자 같은 사람을 쓰십니다. 전도자체가 하나님 보시기는 미련한 방법이요, 어리석은 방법입니다. 우아하게 예수 믿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문둥병자처럼 단순하게 나가십시오. 생각이 많고 계산이 많으면 전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타이밍의 전문가입니다. 시간의 창조자시요, 시간의 전문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실 때도 "때가 차매" 보내셨지 때도 안되었는데 보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순종하면 기막힌 타이밍으로 우리 삶을 간섭하시고 도우십니다.

5절을 보십시오. 나병환자들이 죽기를 작정하고 아람을 향하여 떠난 때가 언제였습니까?
왕하7:5 아람 진으로 가려 하여 해 질 무렵에 일어나 아람 진영 끝에 이르러서 본즉 그 곳에 한 사람도 없으니

다음 7절을 보십시오. 아람군대가 연합군이 쳐들어오는 것으로 착각하고 정신없이 도망가기 시작한 때는 언제입니까?
왕하7:7 해질 무렵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영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

얼마나 정확한 타이밍입니까? 똑같은 시간에 한쪽은 출발하고 한 쪽은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간은 누가 조정하고 있는 것입니까? 누구에게 달려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믿음으로 행동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도 일하시기 시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사마리아 성문 앞에서 나병환자 네 명이 해질 무렵에 일어나 아람 진을 향해 출발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바로 그 시간에 아람 군대로 하여금 큰 군대가 쳐들어오는 것 같은 소리를 듣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정신없이 도망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순종하여 나가면 하나님도 일하십니다.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람 만나게 하시고, 가야할 길을 앞서 가시면서 다 일하고 계십니다.

전도해보면 이런 일을 자주 경험합니다. 평소에 잘 만나지 못하는 사람을 우연히 만납니다. 시내에 나가면 거기서 만나고 모임에 가면 거기서 만나고 시장에 가면 거기서 만납니다. 무엇을 말해줍니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전도하라고 우리에게 붙여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기회를 놓치면 안됩니다. 분명한 것 한 가지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앞서가십니다. 그 사람의 마음을 준비시켜 주십니다. 지금 당장 안 나와도 어차피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언젠가 손들고 나올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내 삶의 목적 가운데 가장 크고 중요한 사명이 복음전도의 사명입니다. 우리의 이 전도의 사명을 위해 구원받았고,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 전도는 옵션이 아닙니다. 선택이 아닙니다. 명령입니다. 수많은 명령 가운데 가장 긴급하게, 가장 우선순위를 두고, 가장 큰 무게를 두고 감당해야 될 예수님의 지상명령입니다.

마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