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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배하는 무리, 소동하는 무리 마2:1-12 (2018.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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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날짜18-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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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배하는 무리, 소동하는 무리 마2:1-12
2018. 12. 9 주일 낮

오늘은 대림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대림절이라는 말은 주님이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라는 뜻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우리 주님께서 아기 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신 성탄절까지의 4주간을 대림절이라고 부르며 우리 주 예수님의 오심을 맞이할 준비하는 기간으로 우리가 이 기간을 보냅니다. 그리하여 매년 연말이면 맞이하는 성탄절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과 천국을 주시려고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진정한 감사와 사랑으로 맞이할 수 있는 이번 성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마2:1-3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예수님의 탄생을 알고 경배하러 온 무리들은 누구입니까? 동방 박사들입니다.
듣고 소동한지라.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소동을 한 무리들은 누구입니까?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과 천국을 주시려고 하늘 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경배하려는 무리가 있는가 하면, 듣고 소동한 무리가 있는 것입니다.

동방 박사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알고 그 분을 경배하려고 유대 땅 예루살렘을 찾아 왔을 때는 예수님이 탄생하시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였습니다. 아기 예수님은 이미 탄생하셨습니다. 미가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유대 땅의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그런데 메시아 탄생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 베들레헴 목자들, 시므온과 안나 그리고 동방의 박사들 정도로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는 몇 개월 전에 정결 예식을 치르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한 번 다녀가셨습니다. 정격예식은 레위기 12장에서 기록되었는데 산모에 대하여 치렀던 예식이었습니다. 남자 아기를 낳으면 7일 동안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태어난 지 8일 째 되는 날에 할례를 치렀습니다. 이후로 33일이 더 흘러서 총 40일이 지나야 비로소 산모는 성전에 가서 정결예식을 치르고 정격하게 되었습니다. 여자 아이의 경우는 남자 아이의 2배의 기간이 필요했습니다. 아기 예수는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40일이 지나면 반드시 성전에 가서 규례를 지켜야 하는데, 예수님의 부모는 이 예식을 지켰습니다.

늑2:22-24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이 구절은 동방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몇 개월 전에 아기 예수께서 부모님과 함께 규례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다녀가셨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교의 최고의 지도자인 대제사장과 성경의 보존을 위해 성경을 필사했던 서기관들, 그리고 율법에 열심인 바리새인들과 훌륭한 종교인이라 자처했던 사두개인들도 예수의 탄생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인 동방의 박사들이 메시아 탄생을 먼저 알고 오랜 여행을 하며 예루살렘까지 찾아와서 묻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메시아 탄생을 먼저 알고 그의 백성과 이방인들에게 전해야 하는데, 이방인이 유대 사람들에게 예수의 탄생, 성탄의 소식을 알리고 있으니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마태는 본문에서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경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경유하여 베들레헴까지 방문한 것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동방 박사들의 경배는 마태만이 유일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 ‘동방’은 예루살렘을 기점으로 동쪽을 말합니다.

예루살렘 동쪽에 여러 나라가 있기는 하지만, 당시 박사들이 있을 수준이라면, 바벨론, 페르시아 두 곳 정도입니다. 그래서 보편적으로 이 두 나라 중에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그 동방이 바벨론을 말하는 것이라고 추론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벨론에는 이미 600여 년 전에 유대인들이 포로로 잡혀가 살고 있었고, 그 유대인들을 통해서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것이기 때문 입니다. 물론 애굽에도 박사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애굽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서쪽에 있기 때문에 아닙니다.

박사들은 그들의 고국인 동방에서 별을 보고 메시아 탄생을 알았습니다.
마2:2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여기에서 별은 하늘에 떠 있는 별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활용하고 있는 별입니다. 왜냐하면 하늘에 떠 있는 별은 지상에 있는 건물은 커녕 지역도 가리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박사들은 그의 별을 보고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았고, 별의 보고 예루살렘까지 찾아 왔으며, 별의 인도로 아기 예수가 있는 집을 찾게 되어 경배했던 것입니다.
동방 박사들이 긴 여행 끝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헤롯 왕궁을 찾아간 것은 새롭게 태어난 유대인의 왕에게 경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아마 왕은 왕궁에서 탄생한다는 보편적인 상식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왕궁에 도착한 박사들은 헤롯왕에게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헤롯왕은 금시초문이었습니다. 헤롯왕은 박사들에게 뒤통수를 주먹으로 한 대 맞은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소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헤롯왕은 멀리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라고 하니까? 예의를 갖추며 자초지종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헤롯왕은 박사들의 이야기를 듣고서 비로소 박사들이 말한 ‘유대인의 왕’이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헤롯왕은 여기에 해답을 줄 수 있는 전문적인 사람들을 모두 불러 온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문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불러온 것입니다.

마2: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헤롯왕이 자문을 구하기 위해서 모은 사람들은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입니다. 이스라엘은 일반적으로 제사장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헤롯왕에게 멘토 역할을 했던 사람은 일반적인 제사장이 아닌 대제사장들입니다. 대제사장은 제사장들이 제비 뽑아서 선출하는데 1년에 한 번 백성들의 속제 제사를 집례를 합니다.

헤롯왕이 자문을 구하기 위해서 모은 서기관들은 성경의 필사를 담당했던 사람들입니다. 당시는 인쇄술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이기 때문에 성경을 손으로 일일이 써서 보존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서기관들이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성경의 사본이 발견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서기관들의 공로였다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당대 최고의 성경 박사들입니다. 그래서 헤롯왕이 그리스도가 탄생하는 장소를 알고 싶어서 자문을 구했을 때 그들은 쉽게 답변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마2:5-6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에 계십니까?’ 동방박사들의 이 질문은 유대인의 왕이 탄생하는 장소를 묻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유대인의 왕이 탄생하는 장소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 탄생하는 장소 이상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처음으로 성탄의 소식을 전하여 알려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장소 이상의 의미가 있는 질문인 것입니다.

지금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메시아가 탄생하셨다는 그 자체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열심히 필사했던 선지자의 예언대로 메시아가 유대의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서 이미 탄생했을 뿐만 아니라 모세의 결례에 따라 예루살렘과 성전에 다녀가셨고, 시므온과 안나가 바로 그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그 분에 대하여 증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늘 그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던 대제사장과 늘 성경을 필사했던 서기관들은 메시아 탄생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정치인 헤롯왕과 다르며, 이방 동방 박사들과는 더더욱 달라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메시아 탄생을 지금까지 전혀 모르고 있다가 동방 박사들로부터 메시아 탄생의 소식을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때 그들이 받은 충격은 헤롯왕이 유대인의 왕이 탄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받은 충격보다 더 훨씬 컷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약 성경에 예언된 메시아, 평강의 왕의 의미를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 메시아 탄생의 소식을 듣고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성탄을 어떻게 맞이하며 경배해야 합니까?

그리스도가 미가 선지자의 예언대로 베들레헴에서 역사적으로 탄생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모르고 있었다면 대제사장이나 서기관들의 지위나 역할로 보면 수치일 수 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듣고 예수님의 잉태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성탄을 처음으로 경배했던 목자들은 천사들이 나타나서 알려주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습니다. 시므온과 안나 선지자 또한 성령의 계시가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대제사장이나 서기관들에게는 천사나 성령의 계시가 없었기 때문에 메시아 탄생은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동방 박사들로부터 메시아 탄생 곧 성탄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천사의 말이나 성령의 계시를 받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동방 박사들을 통해서 예수 탄생을 알게 되었다면 이제라도 관심을 갖고 성탄을 맞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들은 동방 박사들로부터 예수 탄생 소식을 듣고서도 무관심했던 흔적이 역력합니다. 성경 박사라서 예수님이 탄생하실 장소로 정확히 맞출 수 있었던 그들이 예수 탄생의 소식을 듣고도 무관심 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그의 별을 보고 어디에서 어디까지 왔습니까? 동방으로부터 예루살렘까지 최소한 4개월 이상 험한 여행을 마다하지 않고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제사장이나 서기관들은 비록 늦었지만 이제라도 성탄을 맞이할 자신들의 행동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이나 서기관들은 너무나 냉담하게 반응했습니다. 그 누구도 베들레헴으로 갔다는 기록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글들을 필사했던 서기관들이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 진정으로 경배할 마음이 있었다면 동방 박사들보다 먼저 달려가서 무릎을 꿇고 경배해야 합니다. 동방 박사들이 빠른 걸음으로 갔다면 이들은 뛰어서라도 최소한 5-10분이라도 먼저 도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방 박사들이 세 가지 예물을 가지고 왔다면 이들은 다섯 개, 일곱 개, 열 개를 가지고 베들레헴으로 먼저 가서 경배하며 정성껏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대제사장이나 서기관들이 맞이할 최소한의 성탄의 자세입니다. 성탄을 진정으로 경배해야할 도리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중 그 누구 한 사람도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사모하고 기다리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입니다.

요1:9-11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예수님)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예수님을 알아본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베들레헴 근처에서 밤에 양을 치던 목자들, 시므온, 안나,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동방박사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여기서 자기 땅은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은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택하심을 받은 민족으로서, 오랜 세월동안 끊임없이 메시아를 기다려왔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 예수님께서 자기 땅에 오셨을 때,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역사적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기관들은 성경을 필사할 손은 있었지만 베들레헴까지 찾아갈 수 있는 발은 없었습니다. 아기 예수께 예물을 드릴 경제적 여유는 있었지만 예물을 드릴 손은 없었습니다. 메시아에게 경배해야 한다는 지식은 있었지만 경배할 마음은 없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서기관과 제사장들의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우리는 동방 박사들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경배해야 하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1. 죽음을 무릎 쓰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먼 길을 왔습니다.

마2:2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예배는 하나의 종교 의식이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려는 헌신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메시야의 별을 보고 동방에서 유대 땅까지 그 먼 길은 생명을 바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왔습니다. 목적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에게 경배하기 위하여 온 것입니다.

이러한 헌신 없이는 참된 예배는 불가능 합니다. 높은 보좌 위에서, 낮고 낮은 이 땅에 오신 예수를 만나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것은 더 이상 희생일 수가 없습니다.

교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경배하는 태도에 따라, 은혜 받는 정도가 다릅니다. 설교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서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동방 박사들은 그 먼 길을 찾아가다가 죽을지도 모르고, 보물을 다 뺏길지도 모릅니다. 무작정 별 하나를 보고, 생명 걸고 찾아온 자들이 동방 박사들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태도로 예배를 드리십니까? 성가대 찬양 들으려고, 아니면 설교 한번 들으면 안 듣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으로 예배를 드리십니까?

하나님을 만나려는 데는 경배가 첫번째 태도입니다, 생명을 걸고 하나님을 만나려고 해 보십시오. 어떤 희생의 대가를 치르더라고 하나님을 만나려고 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만나 집니다.
렘29: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왜 하나님이 멀리 계시는 것처럼 느껴집니까? 하나님을 만나려는 간절한 열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2. 준비된 예물이 있었습니다.

마2: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그들은 예수님이 계신 곳에 가서 엎드려 아기께 경배를 하고 준비하여 온 예물을 드렸습니다. 황금 (예수님의 왕되심), 유향 (예수님의 신성), 몰약 (예수님의 인성) - 시시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값지고 귀한 예물입니다.

그때 그들이 누렸던 기쁨은 우리의 것이 아니고, 동방 박사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경배를 드리는 자의 것이지 구경하는 자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난 자는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나는 오늘 하나님을 만났다고 외칠 수 있고, 기뻐 외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경배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세상 모든 것이 시시하고, 감동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예배가 맥이 없고, 감격이 없는 것은 진정한 예물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구두쇠, 자존심만 강하고 욕심, 허영으로 가득한 그리스도인에게는 드릴 예물이 없습니다. 혹시 드린 예물이나 헌금이라도 아까워하면서, 인간적으로 계산된 가인의 예물일 수도 있습니다.

예물은 오늘날 현대 교회의 헌금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돈을 많이 내느냐, 적게 내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헌금에 눈물이 있고, 기도가 있고, 감격이 있고, 헌신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예물이 있는 곳에 진정한 예배가 있음을 동방 박사를 통해 보게 됩니다.

3. 동방 박사들은 순종 했습니다.

마2:12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헤롯왕은 박사들에게 경배한 후에 자기에게 오라고 했습니다.
마2:7-8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그러나 꿈에 헤롯왕에게 가지 말고 다른 길로 가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돌아갔습니다.
여러분, 예배의 본질은 순종입니다. 순종은 제사보다 낫습니다. 경배는 순종으로 표현되고, 순종으로 완성이 됩니다.

예수를 믿어도 내 성격대로, 내 마음대로 믿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 식으로 봉사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여러 사람과 부딪히고 시끄럽습니다. 그러나 자기 식으로 예수 믿는 것을 포기한 사람에게는 평화가 있습니다. 어떤 일을 맡겨도, 어떤 상황에서도 순종하기로 결정한 사람에게는 평화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 의견이 없어 보이는 사람처럼 보이고, 바보처럼 보여도 그 사람을 보고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리고 감동을 합니다. 저렇게 말도 되는 않는 일에도 순종하는구나. 그 자체가 귀합니다.

예배의 최고봉은 우리 인격에 순종이 있느냐 없느냐로 결정짓습니다. 어떤 사람은 봉사하고 일하는데 참 눈물이 납니다. 저런 대우를 받고도 그렇게 할 수 있나? 그 사람은 오직 충성뿐입니다. 바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동방 박사는 꿈에 받은 지시대로 다른 길로 갔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습 3가지를 동방 박사로부터 배웁니다. ,
헌신이 없는 예배는 경배가 아닙니다.
예물이 없는 예배는 경배가 아닙니다.
순종이 없는 예배는 경배가 아닙니다.

물론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어떤 때는 드릴 예물이 없어서 빈손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경배는 여기에서 나옵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잘 경배하여 매 예배시간마다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