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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느13:4-27 (2018.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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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날짜18-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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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느13:4-27
2018. 9. 30 주일 낮

북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앗수르로 포로로 끌려간 것을 보고도, 남 유다는 우상을 숭배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유다가 바벨론에 끌려가서 70년간 포로 생활을 하다가 귀환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페르시아 왕 고레스를 사용하셨습니다.

스1:1-4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이때 수많은 유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돌아가지 않은 백성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바로 느헤미야입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왕의 술 관원이라는 높은 관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하루는 자신의 민족이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을 불탔다하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수일동안 울며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자신이 왕에게 은혜를 입어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할 수 있게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기도에 응답해 주셔서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의 허락을 받아 예루살렘 총독으로 부임하게 됩니다.

그가 총독으로 부임하여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데 제일 먼저 양문을 수축합니다. 양문은 성전에서 제사드릴 양이 성 밖에서 성 안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이 땅에 무너진 것들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과 이 백성의 관계를 먼저 세워야 한다는 것이 느헤미야의 결단이었습니다. 하지만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데 어려움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51일이라는 단기간에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완성한 다음 제일 먼저 한 일을 기억하십니까?

느7:1 성벽이 건축되매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

성전을 지킬 문지기와 노래하는 레위 사람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예배를 세우는 일, 제사를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도 급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온 백성을 수문 앞 광장에 모아서 율법 학사 에스라가 율법책을 읽고 그 뜻을 해석하여 깨닫게 하였습니다. 말씀을 깨달고 큰 은혜를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을 지키게 됩니다. 이 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에 없는 영적인 부흥과 도덕적 회복, 정치적 안정을 누리게 됩니다.

대역사를 마친 느헤미야는 얼마동안 페르시아로 돌아갑니다. 그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좋지 못한 징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예배를 소홀히 여깁니다. 제사장이 성전을 더럽힙니다.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헌신을 게을리 했습니다. 가정들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 옛날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울며 달려와 성을 수축했던 느헤미야가 백성들의 신앙이 무너져 내리자 신앙의 개혁을 일으키는 사건이 오늘 본문 느헤미야 13장입니다.

오늘 본문은 한때 커다란 은혜를 체험하고 가슴 뜨거운 신앙으로 살았었는데 이제는 식어진 가슴으로 위선과 가식만 남아있는 빈껍데기의 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성벽재건 이후 평화로운 삶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타락했습니다.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부패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성벽재건보다 백성들의 정신, 믿음을 바로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느헤미야서 결론은 백성들의 신앙과 정신을 바로 세우는 신앙 개혁으로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변질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새로워지지 않으면 부패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정신, 영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행여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뜨겁게 신앙생활을 했었는데 지금은 차가운 가슴을 안고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은 게시지 않습니까?

성전 벽돌을 쌓아가던 그 아름다운 손으로 지금은 그 성전을 무너뜨리는 분은 계시지 않습니까? 불덩이 기도꾼으로 살아갔는데 이제는 숯덩이만 남아계신 분은 계시지 않습니까?

그토록 순수하고 깨끗했던 믿음이 지금은 때가 묻고 더럽고 추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 계신 분은 게시지 않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려는 분은 계시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참으로 묘한 것이 인간이요 신앙생활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새로워지지 않으면, 주님 전에 찾아올 때마다 신령한 은혜를 날마다 새롭게 경험하지 아니하면 신앙은 의식만 남게 됩니다. 감사와 찬송은 사라지고 불평과 원망만 남게 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던 가슴에 어느덧 세상의 가치관으로 꽉 들어차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새 꿈을 꾸지 않으면, 날마다 새로워지지 않으면, 새로운 도전을 받지 않으면, 날마다 부흥을 체험하지 않으면 퇴보하고 무너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도 국가도 민족도 기업도 교회도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날마다 새로워지지 않으면 우리는 부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에 갔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야 성전의 방을 맡은 제사장 엘리아살이 도비야를 위하여 하나님의 전 뜰에 큰 방을 만든 악한 일을 알았습니다. 성전에는 성도들이 가져온 십일조와 성물들을 보관하는 방이 있습니다. 그곳을 도비야에게 내어준 것입니다.

여러분 도비야가 누구입니까? 느헤미야서 2장부터 예루살렘 성벽수축을 끈질기게 방해했던 인물이 나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라는 인물입니다.

느2:19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셀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 이르되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느4:1-3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느4:7-8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아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노하여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 곳을 요란하게 하자

느6:12-13 깨달은즉 그는 (스마야)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 그들이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 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

그들은 성벽 재건을 업신여기고 비웃었습니다. 조롱했습니다. 백성들에게 절망감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왕이 되려 한다고 거짓말을 지어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벽 건축이 잘 진행되자 심히 분노하였습니다. 마지막에는 느헤미야가 하나님께 범죄하게 하여 악한 말로 그를 비방하려 하였습니다.

도비야는 신앙 재건과 부흥을 방해하는 악한 마귀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제사장이란 자가 도비야와 내통을 합니다. 자녀들을 정략결혼 시키고 이 마귀 같은 도비야를 성전 중심자리인 십일조 곡간에 큰 방을 만들어 들여 놓은 것입니다. 그 결과 십일조와 성물을 둘 곳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예배가 무너질 수밖에 없고 백성들의 영성이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분노한 느헤미야는 그 방에 있던 세간들을 창밖으로 집어 던졌습니다. 그리고 방을 깨끗하게 정결하게 소재했습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채워가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계셔야하는 성전 중심에, 예배와 찬양과 기도가 넘쳐야 될 성전 안에 악한 마귀가 살림을 차리고 앉아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꿈틀거려야 될 내 가슴 속에, 기도가 넘쳐야 될 내 입술 속에,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해야 될 내 영혼 속에 세상에 썩을 가치관들이, 내 영혼을 갉아먹는 악한마귀가 주리를 틀고 앉아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문제는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이런 일들이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데 그 심각성이 있는 것입니다. 도비야는 성벽재건을 끈질기게 훼방하던 자입니다. 지도자 느헤미야를 끝까지 괴롭히던 자입니다. 백성들을 낙망시키던 자입니다.

여기에서 도비야는 세속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교회 안에도 하나님의 가치관이 아닌 세속적인 가치관들이 판을 치고 있다면 그 사람이 도비야입니다.

교회가 교회되고, 교회가 새로워지고, 교회가 부흥되고자하는 몸부림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이 도비야입니다.

지도자 느헤미야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도비야입니다. 교인들의 열심과 충성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도비야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다. 나도 각성하지 아니하면 도비야가 될 수 있습니다. 나도 날마다 새로워지지 아니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도비야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있어야할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부흥됩니다. 십일조 곡간에 도비야가 둥지를 틀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성을 세워야 할 그 손으로 성을 무너뜨리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벽돌을 쌓아야 할 손으로 벽돌을 빼먹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로워질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무너져가던 백성들의 신앙과 정신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순수했던 그 처음신앙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성벽을 재건하고 마냥 기뻐했던 그때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울며 하나님 앞에 서약하고 맹세했던 그 첫사랑을 회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느헤미야 10장으로 돌아가 보면 성을 수축하고 커다란 은혜를 체험한 다음 느헤미야는 백성의 대표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제사장 23명, 레위지파사람 17명, 12지파에서 백성의 대표자 44명, 총 84명이 하나님 앞에 언약대로 살겠다고 맹세하고 일일이 도장을 찍고 서약했습니다.

세 가지를 서약합니다.
첫째, 이방인과 결혼을 하지 않으므로 가정을 거룩하게 지켜나가겠습니다.
둘째, 안식일을 철저히 지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하나님 뜻대로 쓰겠습니다. 우리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고백하고 살겠습니다.
셋째, 십일조를 잘 드림으로 구별된 물질 관리를 하겠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하나님과 앞에서 한 서약을 깨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자녀들을 이방인과 결혼시켜 모국어를 잃어버린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모국어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성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가 없게 됩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안식일을 범하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습니다. 너도나도 범하고 사니 당연한 듯이 생각한 모양입니다. 십일조를 저마다 도적질하여 십일조 곡간이 텅텅 비도록 했습니다. 그리하여 삯을 받지 못한 제사장들과 성전의 레위지파 사람들이 농사지으러 시골로 다 도망을 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 서약을 파괴하고서도 그들은 생각하기를 '우리는 성전을 수축한 사람들이야.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백성들이 아닌가?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실 거야.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실 거야'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마음속에 감격이 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향한 충성을 잃어버렸는데도 불구하고 주님 전에 나와 예배하고 말씀 듣고 찬양할 때마다 뜨겁게 흘러내리던 눈물이 말랐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실 거라고 착각하며 살아가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이 세 가지 맹세를 하나씩 회복시켜 나갑니다. 회복의 순서는 맹세 했던 순서와는 반대로 해 나갑니다.

1.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드리게 했습니다.

느13:12-14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 내가 제사장 셀레먀와 서기관 사독과 레위 사람 브다야를 창고지기로 삼고 맛다냐의 손자 삭굴의 아들 하난을 버금으로 삼았나니 이는 그들이 충직한 자로 인정됨이라 그 직분은 형제들에게 분배하는 일이었느라 내 하나님이여 이 일로 말미암아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내가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

느헤미야는 십일조를 드려 성전 곡간을 채우게 하고 충직한 일꾼들을 세워 레위사람들에게 분배하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레위인들이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날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게 하여 성전 제사, 예배를 회복하였습니다.

2. 안식일을 지키게 했습니다.

느13:15 그 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밝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음식물을 팔기로 그 날에 내가 경계하였고

느헤미야는 무너진 이스라엘 신앙을 회복하기 위하여 안식일 신앙을 회복시킵니다. 주일 신앙은 예배 신앙의 회복입니다. 제 아무리 신앙이 좋았던 사람도 몇 주만 지키지 않으면 신앙이 무너지게 됩니다. 매 주마다 주님 전에 나와서 은혜를 받아야만 신앙이 날로 새로워지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주께 힘을 얻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힘은 세상으로부터 돈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으로부터 얻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가 새 힘을 얻습니다.

거짓을 물리칠 수 있는 힘, 악한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 힘, 불의한 자들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고 의로운 하나님의 사람들이 고난을 당하는 이런 현실 속에서 그래도 하나님이 돌리시는 역사의 맷돌은 비록 천천히 돌아가지만 정확하게 돌아간다. 진리를 따라 살아갈 수 있는 힘, 그 힘을 얻는 자리가 이 자리입니다.

주일은 말씀을 통하여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답을 얻는 시간입니다. 천 가지 만 가지 문제를 가지고 나왔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저건 내 말씀이야 그 말씀을 부둥켜 잡고 악을 물리치며 승리할 수 있는 힘, 그 힘을 얻는 자리가 이 자리입니다.

주일은 찬양과 예배를 통하여 내 인생의 가치와 행복을 얻는 날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천 날보다 하나님의 집에서 하루가 좋고 악인의 집에서 평안이 사는 것보다 하나님 집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일은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날입니다. 주일은 이름 그대로 주님의 날, 주님의 사역을 열심히 감당하는 날입니다.

3. 가정을 회복시켰습니다.

느13:23-25 그 때에 내가 또 본즉 유다 사람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아내로 삼았는데 그들의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을 못하니 그 하는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므로 내가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며 그들 중 몇 사람을 때리고 그들이 머리털을 뽑고 이르되 너희는 너희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이나 너희를 위하여 그들의 딸을 데려오지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 하고

예배를 회복한 느헤미야 이번엔 가정을 회복시킵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공동체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가 가정이고, 두 번째가 교회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승리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 공동체를 잘 지키는 것입니다. 이 중 한 가지만 무너져도 불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귀는 가정과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가정은 어떤 곳입니까? 가정은 사랑과 기쁨, 행복의 보금자리입니다. 또한 하늘나라의 시민을 만들어내는 가정학교입니다. 그러므로 애정과 존경으로 화목한 가정을 세워야 합니다. 부모공경으로 복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녀를 주의 교양과 훈계로 가르쳐 믿음의 가문을 일으켜야 합니다. 가정 예배를 통해 행복을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어두운 세상에 소망을 나누며 가정천국을 만들어 가야하겠습니다

가정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자식 놓고 사는 곳이 아닙니다. 하늘나라의 시민을 만들어 내는 가정학교입니다. 이같이 가정은 귀한 것이기에 반드시 지켜야만 합니다.

그런데 가정을 거룩하게 지키겠다고 서약했던 사람들 가운데 가정을 더럽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가정의 신앙을 파괴하는 자들, 이방여인과 교제하는 자들, 어미가 이방여인이라 제나라 말을 잃어버린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25절 "내가 책망하고 저주하며 두어 사람을 때리고 그 머리털을 뽑아 버렸다" 대단히 단호하게 과격할 정도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왜요? 그만큼 가정이 중요했다는 얘기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들이 거룩하고 깨끗하기를 원하십니다.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자녀들을 잘못 결혼시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결혼은 대단히 중요한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두 남녀의 육체적인 결합이 아닙니다. 정신과 정신의 만남입니다. 신앙과 신앙의 결합입니다. 바른 가치관과 가치관의 조화입니다.

중요한 것은 조건도 돈도 학벌도 아닙니다. 믿음이요 영성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의 결혼에는 부모가 당당히 관여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 것인데 왜 부모가 간섭이냐는 태도는 불효자식이나 하는 얘기입니다.

성경에 보면 결혼 잘못해서 망한 사람, 가문, 나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에서가 그랬고 아합(이세밸)이 그랬고 솔로몬이 (이방여인들) 그랬고 여호사밧이 (아합의 딸 아달랴)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하는 도구는 언제나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일하는 방법도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건강해야 나라가 건강하고 여러분이 똑바로 서 있어야 나라가 똑 바로 서 있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가정을 쓰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축복을 먹고 자란 자녀들을 쓰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먹고 자란 여러분의 자녀들이 이 땅의 제2의 느헤미야가 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또 다른 공동체는 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일으켜 세워 이 민족을 세워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교회를 통하여 이 민족을 이끌어갈 지도자들이 구름 떼처럼 쏟아져 나오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교회와 가정과 사람은 생명체입니다. 생명체는 썩든지 새로워지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시간이 지났는데도 가만히 있는 것은 돌멩이입니다. 광물입니다. 생명체는 부패하든지 새로워지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살아있다면 날로 새로워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새로워지고자 하는 열망이 없다면 개혁에 대한 의지가 없다면 이미 여러분의 정신, 영혼은 부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 땅에서 무너진 정신을 일으켜 세울 지도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제2의 느헤미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들이 건강하게 세워지고 쓰임받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교회가 이 시대의 느헤미야가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바르게 사십시다. 제대로 믿어보십시다. 열심히 살아가십시다. 이곳에서 이 민족의 지도자들, 제2의 느헤미야가 구름떼같이 쏟아져 나오도록 두려움과 경외감을 가지고 기도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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