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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단3:13-18 (2018.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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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날짜18-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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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단3:13-18
2018. 9. 9 주일 낮

오늘의 말씀은 지금으로부터 2,600년 전,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바벨론이 유대를 정복하고 많은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 포로 중에 하나님을 잘 섬기는 다니엘과 세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포로로 끌려갔지만 다니엘은 바벨론 모든 지혜자의 어른이 되어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게 되었고, 그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각 지방을 다스리는 최고의 책임자가 됐습니다.

바벨론은 비록 세계적인 대제국이었지만 인종과 언어가 제각기 달라 쉽게 분열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제국의 내부 결속을 위해서는 종교처럼 국민의 정신을 통합시키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신상 건설 사업과 숭배법을 선포했습니다. 그리하여 높이가 무려 육십 규빗 (30m), 나비가 여섯 규빗 (3m)이나 되는 금 신상을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위시한 나라의 모든 공직자들을 신상의 낙성식에 불러들여서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라고 명했습니다.
단3:5 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내 신앙을 지키기가 어려울 때를 만나곤 합니다. 그러나 노련한 등반가의 진가는 야산을 오를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험산 계곡을 지날 때에 비로소 발휘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장이 유능한 선장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고요한 바다에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바다에 풍랑이 일어나 흉흉할 때 비로소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평탄할 때는 그 신앙의 진위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극심한 환란과 시련 그리고 도전에 부딪혀 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도전이 필요합니다. 신앙생활은 도전입니다. 신앙생활은 고통을 잊게 하는 마약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군병이 된다는 것은 어린아이의 병정 놀음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이 영원한 신혼의 밀월일 수만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선한 싸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신앙생활은 곧 전투요, 목숨을 건 전쟁이란 말입니다. 지금은 영적전쟁의 때입니다. 한 번의 실패에 포기해서도 안 되고 한 번의 승리에 도취되어 방심해서도 안 되는 끊임없는 싸움의 연속입니다.

본문은 오늘 우리에게 한 가지 커다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어떤 도전이 와도 신앙을 지킬 수 있는가? 어떤 유혹이 와도 신앙에 오점을 남기지 않을 수 있는가? 오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우리 모두 이 주님의 커다란 질문 앞에 분명한 응답을 해야 할 것입니다.
큰 재목은 큰 연장으로 다듬는 법입니다. 열매 없는 나무엔 아이들이 돌을 던지지 않습니다. 열매가 많은 나무일수록 많은 돌을 맞게 되어 있습니다. 큰 신앙인 일수록 큰 시련을 만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큰 시련, 큰 도전이 찾아올 때 하나님이 나를 크게 쓰시려나 보다 생각하시고 기쁨으로 시련을 맞이해 보십시오. 사탄도 나를 알아보는 구나! 오히려 기뻐해 보십시오. 문제를 두려워하지도 말고 회피하려고도 하지 마십시오.

이 세 청년의 선택의 기로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시시때때로 부딪히는 갈등과 시험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때마다 오늘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보좌도 잃지 않고 바벨론의 왕좌도 버리지 않는 회색지대가 없을까 하고 눈치를 살피곤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세 주인공은 우상 앞에 경배하는 길이 아닌 죽음의 길을 선택하고 이글거리는 풀무불 앞에 서게 됩니다.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우상에게 절하지 않은 그들은 바로 체포당해 왕 앞에 끌려왔습니다. 왕은 대노했지만, 인재를 아끼는 왕은 그들을 설득했습니다. 다시 한번 기회를 줄 테니까 금 신앙 앞에 엎드려 절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왕의 호의마저도 거절했습니다.

단3:18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여러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가졌던 신앙이 어떠한 신앙이었기에 이토록 당당 할 수 있었으며 오늘 우리를 이토록 부끄럽게 만들고 이처럼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단 말입니까?

1. 타협하지 않는 신앙이었습니다.

본문 14절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회유하며 말하기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이에 대한 청년들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16절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이 말의 뜻은 양보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양보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말로 대화해서 문제를 풀어갈 때가 있고 행동으로 말해야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임금님이여 우상에 절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탁상공론을 하거나 타협해야할 문제가 아닙니다. 말로 대답할 필요가 없는 문제입니다. 우리의 양심과 신앙이 허락하지를 않습니다. 그들의 결의는 단호하고 분명했습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다른 것에는 양보와 타협을 할 수 있지만 타협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십계명 중 하나님에게 속한 네 가지 계명입니다. 네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우상에 절하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라. 다른 것은 다 타협하고 양보할지라도 하나님에게 속한 네 가지 계명은 타협하거나 양보할 수 없는 중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양보해야 할 것은 양보하지 않고 양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너무나 쉽게 양보해 버리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성질과 자존심을 죽이지 못하여 양보하지 못하고, 반대로 도무지 양보할 수 없는 신앙의 순결, 하나님과의 관계 등에 대해서는 둔감해질 데로 둔감해진 그리스도인들을 종종 봅니다.

세상이 우리를 유혹으로 이끌 때에, 우리를 타협의 광장으로 몰아갈 때에, 우리는 세 청년의 단호한 결의를 보여줄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일만은 양보할 수가 없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선 대답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김으로 신앙 양심에 거리끼는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신앙입니다.

단3: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비록 바벨론에 끌려와 살고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전지전능 하셔서 자신을 섬기는 백성을 지키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 불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으십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자신을 섬기는 백성을 지키실 것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은 질병을 치료하고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습니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왕의 진노를 두려워하지 않고, 신상에게 절하지 않겠다고 담대히 말할 수 있었던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능력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을 건져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사울 왕을 위시한 모든 장수와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능력으로 자신을 골리앗의 손에서 건져내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삼상17:34-37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때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아버지로 믿는 사람은 용기가 있습니다. 용기와 신앙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음에도 용기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은 언제나 항상 담대함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용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승리하려면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용기가 있어야 믿음을 끝까지 지킬 수 있고, 끝까지 믿음으로 잘 달려갈 수 있습니다.

모든 성공한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영적으로 승리한 사람은 용기의 사람입니다. 모든 실패한 사람은 용기를 내야 할 때 내지 못했던 사람들입니다. 쓸데없는 일에 용기를 낸 사람들입니다.
요셉이 얼마나 용기 있는 사람입니까?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치고 형제들을 용서하고 화해하고 얼마나 용기 있는 사람입니까?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고 믿음으로 사는 것 보통 용기입니까? 세리 마태가 자기의 삶을 다 청산하고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 얼마나 큰 용기입니까?

믿음은 항상 용기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용기입니다. 십일조를 하는 것도 굉장한 용기입니다. 헌신하는 것 용기입니다. 전도하는 것 용기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 용기입니다. 죄를 물리치는 것 용기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 용기입니다.

다니엘이 얼마나 용기가 있었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얼마나 용기가 있었습니까?

여러분, 이 세상의 불행한 삶에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삶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주의 일을 할 때 항상 언제나 끊임없는 이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이 용기의 대가는 무한한 것입니다.

히10: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모세가 용기를 내어서 애굽의 왕자 자리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얼마나 놀라운 복을 받았습니까? 기생 라합이 정탐꾼을 숨기다가 들키면 삼족이 멸할 수도 있는데, 정탐꾼을 숨기고 얼마나 놀라운 복을 받았습니까? 기생이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3.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입니다.

세 청년이 가진 신앙의 클라이막스는 18절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단3: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나는 분명히 성경의 모든 약속들을 문자 그대로 믿습니다. 나는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한다는 신유의 능력을 믿습니다. 나는 분명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된다는 것을 믿습니다. 나는 분명히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자들에게 넉넉한 재물을 허락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을 이글거리는 풀무불 속에서 건져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왕이여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 지라도, 우리가 풀무 불에 타서 죽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우상 앞에 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위대한 신앙고백입니까?
한국 코미디계의 대부 김경태 장로님은 말년에 간암으로 투병생활을 하셨습니다. 죽기전날 가족예배에서 드렸던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터인데 죽음을 두려워 하리이까? 하오나 이 고통이 너무나 극심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 입술로 범죄할까 두렵습니다. 못나도 장로인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까 두렵습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시간마다 찾아오는 고통 때문에 몸부림을 하고 살아왔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가릴까 두렵사오니 이 고통을 제거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이 고통 가운데도 당당히 신앙을 지키며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고 사랑스런 내 자녀들에게 우리 아버지는 그토록 처절한 고통 가운데서도 당당히 아버지의 영광을 찬송하며 갈수 있었다는 기억을 남기게 해 주옵소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 고통이 제거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나는 주님 앞에 감사하며 눈을 감고 싶습니다.”

공개석상에서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답변을 하자 느부갓네살 왕이 “분이 가득하여 낯빛이 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평소보다 칠 배나 더 뜨겁게 타오르는 풀무 불에 그들을 던지라고 명했습니다. 그런데 사건이 극적으로 반전됩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은 불에 타 죽었는데, 그들은 멀쩡한 것입니다.

단3:25-28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 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이렇게 살아 나온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보고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을 높이며 조서를 내립니다.

단3:29-30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언어를 말하는 자가 모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더라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이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한 그들을 건지시고 높여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처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신앙에까지 나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경제적 불황이어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습니다. 몸이 날로 쇠약해져도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최악의 환경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쁨과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신앙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신앙은 하나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전능하시며, 그를 믿는 모든 믿음의 사람,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을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을 삶의 목표를 정해야 합니다.

“한번뿐인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지혜”라고 하는 글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벌도 하루에 삼분의 일밖에 일하지 않지만 일을 할 때는 집중해서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어디에도 관심을 갖지 않고 오직 꿀을 찾아서 수없이 먼 길을 달려가고 계속해서 그 하나에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개미도 하나에 집중합니다.

모든 생명이 하나에 집중할 때에 평안, 자유, 번영 발전이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여러분께서도 해 보셨을 것입니다. 볼록렌즈에다가 햇빛을 받아 종이에다가 집중을 하면 종이가 어떻게 됩니까? 불이 붙어 연기가 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을 잘 믿고 잘 섬기는 일에 집중하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일에 집중하면 우리가 살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십니다.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역설적으로 말하면 왜 망하느냐? 잘못된 하나에 집중해서 망하는 것입니다. 나쁜 일에 집중하니까 생명을 잃습니다.

잠6:26-28 음녀로 말미암아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여인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서야 어찌 그의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숯불을 밟고서야 어찌 그의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

나쁜 것 그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모든 것을 잃어버립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이 도박에다 집중합니다. 술과 마약에 집중합니다. 그 결과 가정도, 행복도 건강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마귀는 잘못된 일에 집중하게 합니다.

좋은 일, 하나님을 잘 믿는 일에 집중하면 마음이 건강합니다. 삶은 부지런해집니다. 생활은 깨끗해집니다. 대인관계는 원만합니다. 좋은 일 하나에 집중하므로 모든 것이 따라 온다는 겁니다. 행복도 따라옵니다. 오늘 인간의 불행이 어디에 있습니까? 나쁜 일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유계준 장로님은 교회를 핍박하고 선교사를 핍박하는 아주 잘못된 삶을 살았던 분입니다. 그렇지만 이 분이 예수 믿고 돌아와서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을 최고의 목표를 삼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집에다 교회를 세우고 얼마나 믿음으로 사는지 6. 25사변이 일어나니까 자신이 교회를 지킬테니까, 목사님은 남한으로 내려가시라고 했습니다. 자녀들도 남쪽으로 내려 보내고 자기 혼자 산정현 교회를 지키다가 공산주의들에게 순교를 당하셨다고 합니다.

이 분을 고문한 분이 남한에 내려와서 회심하고 목사가 되었는데 유계준 장로님이 어떤 고문을 당해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남한에 내려온 그 장로님 자녀들 8남매가 하나님 한분을 잘 섬긴 아버지 한 사람 때문에 얼마나 복을 받있느냐? 8남매가 다 의사이고 다 의학박사고 셋째 아들인 유기천 장로님은 서울대학교 총장을 하셨고 부총리를 하신 이한빈 박사님은 그 집 사위이고 자녀들이 다 잘 되고 너무 너무 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

여러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잘 믿으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 하나님이 그 사람의 평생을 책임져 주십니다. 요셉이 하나님을 잘 믿으니 요셉이 110세에 죽을 때까지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다니엘이 하나님을 잘 믿으니 다니엘의 평생을 하나님이 책임져 주셨습니다.

자녀들을 어떻게 잘 길러야 합니까? 부모가 예수님을 잘 믿으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자녀는 내가 기르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길러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같은 믿음으로 승리하고 크게 쓰임 받고 복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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